문인같은 군인, 군인같은 문인. 김점곤평화연구원장(72)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해방이듬해인 46년 서울문리대에서 수학중 우연한 기회에 군에 투신,육사를
1기로 졸업한 그는 6.25전쟁때 사단장으로 야전군을 지휘한 장성출신이다.

그후 정전위한국수석대표를 끝으로 17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한 그는 62년
"학자"로 변신한다.

제30회 국군의 날을 맞아 경희대명예교수겸 평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 약력 ]]

<>23년 광주생 <>46년 육사1기졸업 <>6.9사단장,합참본부장,국방부차관보,
정전위한국수석대표 <>62년 경희대교수,대학원장,부총장 <>72년 법학박사
(경희대) <>현재 경희대명예교수 평화연구원장 성우회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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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원장을 맡고 계신데 연구원 소개 좀 해주시지요.

"지금까지 남한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이니셔티브를 쥔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나 민간연구소에서 다루지 않는 지적 사각지대를 메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를위해 뜻있는 몇사람이 모여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주로 대북정책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박사학위 소지자는 따로
두지않고 외부박사들을 연구위원으로 위촉,용역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 선생님께서는 신문에 글을 많이 쓰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요즘도
많이 쓰십니까. 연구원 활동말고 다른 일은 어떠신지요.

"예전엔 많이 썼지요. 아마 가장 많이 쓴 사람중 하나일 겁니다. 주로
박정희정권때 썼는데 "찬동"하는 글을 안써서 그쪽에서 당황했다고들
합니다. 그래도 박정희씨는 왠지 너그러이 봐주더군요.

아마 다른사람같았으면 뭔일 났을텐데 말이지요(웃음). 그리곤 유신후
글쓰기를 중단했는데 당시 육영수여사는 "그이가 당신말을 잘듣는 것
같은데 계속 글을 써달라"고 주문하기도 했지요"

-군에는 어떤 계기로 입문하게 되셨습니까.

"서울문리대 재학중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46년2월 복학을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군대에 가게됐지요. 당시 동기생이던 채문식 박준규씨는
군대에 안가고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입대 2년만인 48년에 소령을 달고 또 얼마안가 중령이 되고나니
학교로 돌아갈 시기를 놓쳐버렸어요. 결국 타성으로 군에 남게 된거죠.
그러나 제인생에서 군에 몸담았던 시기는 총17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역후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군에 있을땐
"군복입은 학생"이란 소리를 듣더니 학교에선 "가르치는 군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지나고 생각하니 한반도정세와 비슷한 운명을
걸어왔다는 느낌입니다"

-6.25당시 사단장으로서 야전군을 지휘하신걸로 알고있습니다. 지금
당시를 회고하면 감회가 새로우실텐데요.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육본정보차장이었습니다. 여순.반란사건
토벌작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어요. 그때 발령을
받은 거죠.그런데 정보차장인 나에게 전혀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거예요.
아마 인사벌령직후라 그랬던 것같아요.

그때 북이 쳐내려왔습니다. 임신7개월인 처와 공연을 보고있다가 소식을
접하고 육본에 들어가보니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전쟁은 원래 선으로 막는
법인데 선이 한번 무너지지 혼란상태가 계속되는 겁니다.

당시 정보국장은 장도영씨였는데 파티를 마치고 온 시간이 새벽4시여서
정신이 없더라구요. 조금있다가 개성의 12연대마처 무너졌다며 저보고
서울 서북방면을 맡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당시 인사국장이
강영훈씨였습니다.

그때부터 일선 연대장으로 싸우기시작,전쟁이 끝날때까지 사단장으로
전쟁을 겪었습니다. 아마 전쟁중 일선에 제일 오래 있었지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국민들,특히 젊은이들의
안보의식이 매우 희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 대한 경계심도
예전만 못하구요. 국가안보라는 것이 비단 북한만을 경계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지요.

"중요한 문제입니다. 군사학에 보면 큰 전쟁은 20년을 주기로 일어난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약50년간 큰 전쟁을 격지 않고 있지요.

이를 두고 일부학자들은 "오랜기간 전쟁이 없으면 질서와 규율,국가관이
해이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애국심이 강한 이스라엘도 요즘 국가관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 아닙니까. 어느정도 세계공통의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우리는 가끔 정전을 종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물론 경제번영이나 고학력화에 따라 국민의식보다는 시민의식이 강해지는
것을 막을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쌓아올린 부에 중독돼 안보관이
느슨해져선 안될 것입니다"

-북한은 대남적화야욕은 예전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는지 몰라도 여전히
재래식 무기를 개량, 군비를 확장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또 인민들은
식량난으로 굶주리고 있으나 미사일이나 화학무기에는 돈을 아끼지않고
있다는군요.

"무기체계상 북한은 지금 매우 어려운 시기입니다. 보통 무기를 신기종
으로 대체하는 것은 무기가 절대적으로 낡았을 경우나 적국보다 상대적
으로 낡았을 경우이지요.

그러나 북이 아무리 무기를 대체하고 싶어도 남한의 군비투자 속도를
따라가진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재래무기가 무섭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북한은 지금 일산에서 20km거리밖에 안됩니다. 우리처럼 수도권에 두뇌와
산업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선 수도권 근처 아무데나 (폭탄을) 떨어뜨려도
막대한 피해가 납니다.

재래비행기도 마찬가지지요. 대공레이더망으로 이를 모두 잡아낼순
없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보유한 재래식 무기가 더이상 노후화돼 더이상 쓸모없는
골동품이 되기전에 남침을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가능성이 있다면 옛 일본처럼 옥쇄공격을 하는 것이겠지요. 이경우
남한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겁니다. 아마 방글라데시처럼 세계
최빈국가로 몰락할 것은 틀림없을 거예요. 다만 북한은 속전능력이
없습니다.

우선 러시아가 군사공급급원의 역할을 더이상 하지않을 것입니다.

중국도 경제건설에 당의 운명을 걸고있고 이미 국내시장을 외국기업에
개방했기때문에 한국전쟁에 개입할 경우 국제관계가 끊어지게돼 함부로
끼어들수가 없습니다.

부가 군사적으로 부담이 되기시작하는 것지요. 따라서 북한은 자신의
힘으로는 몇개월 못갑니다. 다만 국지적인 도발가능성은 상존해있다고
봅니다"

-이번엔 동북아정세쪽으로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앞으로 동북아 안보에
있어서 가장 불확실한 요소는 중국의 군비확장및 그에 따른 패권국가화
움직임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본도 중국의 패권화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있으며 우익정객들의
득세가 눈에 띕니다. 하시모토통산상이 자민당총재로 당선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안보전략을 취해야한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1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집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동아시아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있고
중국도 중화사상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세계4강에 둘러싸인 우리가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한국은 강대국은 아니더라도 강대국의 부당한 요구에 "노"라고 말할수
있을 정도의 군사력은 갖춰야합니다. 예를들어 스위스처럼 말이지요.

아울러 우리는 남사군도및 말래카해협등 우리의 이익이 걸려있는
분쟁지역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해야한다고 봅니다. 해상통로를
지킬 정도의 공군력도 갖춰져야 하겠구요"

-최근 군인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김영삼정권 초기의 군에 대한 사정 바람은 그렇다쳐도 낮은 보수등
군인에 대한 대우는 나아진게 하나도 없고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를 반영하듯 직업하사관들의 이직률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군의 사기증진 방안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군은 특수조직이긴 하지만 엄연히 국민의 일부입니다. 국민의식이나
도덕적수준을 도외시하고 군만이 고고하길 바라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어차피 우리 군인들은 안방에서 병영으로 들어는 거니까요.

물론 군도 자체적인 의식개혁작업을 해야합니다. 복지나 인권도 중요
하지만 도덕을 통한 규율강화,이것이야말로 사기진작의 기본전제입니다.
개인적으로 군이 국민의 도덕적 도량이 됐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얼마전 육사가 여자생도의 입학을 허가키로 했다해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뜻이겠지요. 육사1기 졸업생으로서 앞으로 육사는
어떻게 자리잡아 나가야한다고 보십니까.

"육사는 대학교육과정이지만 국비로 군의 기간요원을 만들기위한
특수기관입니다.

훈육과정이 있긴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좋은 인재가 배출되는
건 아닙니다.

우선 좋은 인재가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안경을 끼고 체력이 좀 뒤쳐지는
사람이라도 예정바르고 정신이 똑바로 박힌 그런 젊은이들이 육사에 많이
지원해줬으면 합니다"

-연세에 비해 정정해 보이십니다. 특별한 건강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같아요. 그밖에
매일 체육관에 나가 1시간 가량 강화훈련을 하는데 기관지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대담 =이진원 정치부장]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