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충이 돌아가고 나자 녕국부와 영국부 사람들은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께서 칙서 같은 것을 통하여 어명을 내려도 될 터인데 왜
가정을 직접 만나보려고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기 이를데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심문할 일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그런데 하수충은 왜 만면에 웃음을 띠고는 폐하의 뜻을 전했을까.

하수충도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그저 생각없이 웃음을 띤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하수충의 웃음이 좋은 일에 대한 징조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가정은 그런 것들을 따지고 있을 사이도 없이 급히 입궐용 옷으로
갈아입고 궁중으로 향했다.

집안에 남은 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하고 궁궐 쪽에서 무슨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한참이 지나도 아무 전갈이 없었다.

대부인이 답답한 나머지 서너명의 집사들을 궁궐로 보내어 소식을
알아보도록 하였다.

마침내 집사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두 팔을 위로 번쩍 올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경사로다! 경사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대부인을 비롯하여 형부인,왕부인,우씨,이환,희봉,영춘,설이모 등이
대청에 모여 있다가 눈들을 둥그렇게 뜨며 서로 얼굴들을 쳐다보았다.

가정 대감이 재상으로 등용되기라도 하였단 말인가.

"그렇게 고함만 지르지 말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자세히 말해보아라"

대부인이 들떠 있는 집사들을 향해 좀 엄하게 말하자 그제서야 집사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답하였다.

"저희들이 임경문 밖에서 애를 태우며 임경전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육궁도태감 하대감이 나오지를 않겠어요.

그래 달려가서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가느냐고 물어보았죠.
하대감이 이야기를 할듯 말듯 하다가 입을 열었는데,글쎄 황제 폐하께서
가정 대감의 맏따님을 봉조궁상서(봉조궁상서)로 책봉하시고 현덕비로
삼으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뭐라구? 원춘이가 황제 폐하의 후비가 되었다구?"

대부인이 너무 기쁜 나머지 어찔 현기증을 일으키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렇습죠. 조금 있다 가정 대감께서 희색이 만면하여 나오셔서 역시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어서 돌아가 대부인 마님께 아뢰라고
하셨어요. 다른 마님들과 함께 빨리 궁궐로 들어와 성은에 사례하라고요"

"그럼 우리도 황제 폐하를 알현한단 말인가?"

부인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손뼉까지 쳐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