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모조화가로는 영국의 톰 키팅을 들수 있다.

그는 생전에 25년간에 걸쳐 컨스터블 렘브란트 드가 게인즈버러 고야
르누아르 터너 로트레크 모딜리아니 모네 고흐등 저명화가들의 그림을
2,000여점이나 그려 세상에 유통시켰다.

그러나 그는 돈을 벌 목적으로 저명화가들의 작품을 모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18세기 화가인 새뮤얼 파머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무더기로
모사해 화랑가에 내놓았다가 1977년 사기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한 말이
그 사실을 입증해 준다.

화가들을 이용해 떼돈을 버는 화상들에게 "단순히 항의하기 위해" 그런
행위를 저질렀고 "판것 보다 선물로 준 것이 훨씬 많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또한 모조품에 항상 가짜라는 것을 식별할수 있는 단서를 남겨
놓았다.

그림을 제작하기에 앞서 화포에 흰색 납페인트로 "이것은 모조품이다"
"누가 소유한 적이 있는가"라는 문구를 써놓았거나 그림의 어느 한 곳에
원화와는 다른 엉뚱한 기법을 썼는가 하면 옛날 그림에 현대의 화포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의 모사품은 진품과 구별할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들 화가의 영혼이 실제로 나의 손을 인도하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그림의 영상이 저절로 화포위로 흘러나왔다"는 그의 회고담을
보더라도 모사화의 귀재였음을 알수 있다.

더욱이 그가 66세로 1984년 세상을 떠나기 이전에 자기가 만든 모사품
명단을 밝혀 놓지 않았으니 미술계에는 곤혹스러운 유산을 남긴 셈이다.

거장들의 작품이 경매에 나올 때마다 경매인들이 그 작품이 모조품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항상 갖게 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해에 런던 크리스티경매장에서 그의 모조품으로 인정된 204점의
작품이 경매에 부쳐져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팔린 바도 있지만 그밖의
수많은 모조품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게 되었다.

서방 선진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의 이콘(그리스정교 성화) 대부분이
스탈린시대에 소련권부의 치밀한 계획아래 모사되어 수출된 것이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뒤늦게나마 가짜 이콘의 실체가 드러나 다행스런 일이긴 하나 "종교의
상징으로부터의 인민해방을 위한 이콘매각"이라는 소련의 속임수에 놀아난
서방미술계가 어릿광대같기만 하다.

그동안 그 이콘들이 몇십만~몇백만달러의 엄청난 고가로 거래되어 왔으니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