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의 추상같은 명령에 하인들이 그 사람을 끌고 나가 곤장 스무대를
때렸다.

곤장이 엉덩이를 치는 소리와 그 사람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생생히
들려오는 가운데 희봉은 남녀 하인들을 둘러보며 다시금 당부를
하였다.

"너희들 저 소리가 무슨 소리인 줄 알겠지? 내일 지각하는 사람은
오늘의 두 배,그러니까 곤장 마흔대를 각오해야 할 것이요, 모레
지각하는 사람은 오늘의 세 배,그러니까 곤장 예순대를 각오해야
할 것이야. 알겠지? 알았으면 각자 할 일을 맡은 데로 가봐"

하인들은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을 하고 각처로 흩어졌다.

희봉은 지각을 한 하인을 곤장 스무대로 다스리는 것도 벌이 약하다
싶어 총집사인 내승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의 한달치 식비를
지급하지 말도록 지시하였다.

이러는 사이에 영국부에서도 사람들이 희봉에게로 건너와 물품 청구를
하며 부절을 구하였다.

왕흥의 아내는 수레 네 대와 큰 가마 두채,작은 가마 네채에 드리울
망락, 즉 그물술을 만드는데 소용되는 실과 구슬을 꿰는데 쓰일 실을
청구하러 왔다.

희봉은 일일이 그 분량을 점검한 후에 채명더러 장부에 정확히 기록하게
하고는 영국부의 부절 한쪽을 꺼내어 왕흥의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그 다음 영국부에서 집사 네 사람이 희봉에게로 와 부절을 받으려고
하였다.

희봉이 그들이 청구하는 내용을 살펴보니,두 사람의 것은 제대로 되어
있는데 나머지 두 사람의 것은 계산이 틀려 있었다.

틀린 두 사람의 것은 다시 고쳐 가지고 오도록 돌려보내었다.

그 두 사람은 하도 부끄러워 얼굴이 벌개져서 영국부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장재의 아내가 수레와 가마에 둘러칠 포장을 다 만들었다면서
그 삯전을 받으러 왔다.

이때 왕흥의 아내가 청구한 대로 물품을 받았다는 표시가 새겨진 부절을
도로 들고 왔으므로 희봉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 살펴보니 장부와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장재의 아내가 청구한 대로 삯전을 받도록 흔쾌히 부절 한쪽을
떼어주었다.

그 다음 사람이 가져온 청구서에는 새로 지은 보옥의 서재 도배지
살 돈이 적혀 있었다.

우선 그 청구서를 받아 장부에 기재하게 하고는,장재의 아내가 부절을
도로 가져오자 장부에 기재된 대로 삯전을 받았는가 점검한 후에야
도배지 살 돈을 타도록 부절을 건네주었다.

이렇게 부절 패쪽이 청구서 역할도 하고 영수증 역할도 하였는데,희봉은
부절을 잘 활용함으로써 영국부와 녕국부 두 집안 일을 빈틈없이 잘
처리해나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