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이트"제품은 좋기는 하지만 비싸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비싸도
잘 팔리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상품을 꾸준히 개발하는 길 밖에 없지요"

자동차용품업체 "카메이트"의 창업주인 무라다 다카유키사장이 말하는
품질우선 경영관이다.

고교를 중퇴하고 가진 것이라고는 스무살에 딴 자동차 운전면허증 밖에
없었던 청년 무라다가 무작정 도쿄에 상경한 것은 지난 58년.

그저 자동차가 너무 좋았던 그는 신문의 구인난에서 자동차와 관련이 있을
법한 상호명 "디트로이트상회"를 발견한뒤 "문"을 두드린 결과, 운좋게 채용
됐다.

이회사는 자동차용품및 액세서리등을 취급하는 업체였다.

그로부터 6년후 29세가 된 무라다는 독립을 결심, 아이디어로 승부하겠다는
야심 하나만으로 "카메이트"사를 세웠다.

제 1호 작품은 실패작이었다.

자석에 쇠줄을 붙여 자동차의 범퍼에서 발생하는 정전기를 없애는 제품으로
초기에는 팔리는 듯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매출이 뚝 떨어졌다.

자석의 힘이 너무 약해서 쇠줄이 금방 떨어져 나가는 단점때문이었다.

이에 좌절하지 않은 무라다사장이 또 다른 착상에 몰두한 6개월후 제2호가
탄생했다.

그당시 대부분의 일본차에는 충돌시 목뼈부분을 보호하기 위한 머리받침대
가 부착돼 있지 않았다.

"시트뒤쪽에 부착할수 있는 머리받침대를 만들면 팔리지 않을까"

무라다사장은 곧바로 머리받침대에 필요한 스펀지 커버장식등을 아는 사람
으로부터 조달했다.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대금지불은 상품을 팔고 난뒤로 미뤘다.

예상외로 잘팔려 월 매출이 400만~500만엔에 이르게 됐다.

무라다사장은 상품의 히트로 생겨난 자금을 가지고 세계일주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선진국의 자동차시장을 둘러보기 위한 것으로 독일 프랑스등 유럽과 미국의
뉴욕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등을 둘러보는데 약 40일이 소요됐다.

여기서 무라다사장은 자동차의 대중화 물결을 읽어내고는 산업디자인의
중요성을 감지하게 된다.

이런 느낌을 바탕으로 현 전무이사인 나가오 마즈오를 디자이너로 초빙한
것이 지난 70년.

기발한 아이디어에 통일된 디자인을 특징으로 상품을 만들어 나갔고 특히
어떤 차에도 끼워넣을수 있는 타입의 "도어미러"는 그당시 시대를 앞서간
상품이어서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데 위기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70년대 말께 사회문제로 떠오른 폭주족때문이었다.

경찰이 도어미러를 장착한 차를 폭주족의 상징으로 간주하게 되면서 매출은
한해전의 절반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무라다사장은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상품구성전략을 강화, 20개품목에 대해
통일된 디자인과 세련된 포장을 무기로 당시 대두하기 시작한 홈센터를
중심으로 판매했다.

그로부터 1년만에 매출이 회복됐으며 드링크홀더 휴지통 방향제등을
내놓으면서 "카메이트"는 종업원 300명규모의 자타가 공인하는 자동차용품
업계의 선두주자가 됐다.

"자동차산업의 신장세가 둔화되는 현상황에서 자동차용품업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시나리오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2의 창업을 꿈꾸고 있는 무라다사장의 다음번 시나리오는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 김지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