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명에서 탑의 원형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에서 찾아진다.

"하늘의 문"이라는 뜻을 지닌 바벨탑은 신의 세계에 접근해 신과 같은
힘을 얻고 신의 세계와 땅을 연결하려는 인간의 상승의지를 상징하는 것
이었다.

그러나 성서의 기록을 보면 인간이 바벨탑을 세운 목적은 다른데 있었고
그로 인해 신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인류역사초기에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뒤 노아의 후손들은 시달땅
(바그다드 남쪽 50km지점에 있는 아카드)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에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세우기로 했다.

대홍수와 같은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하느님은 또다시 물로서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약속을 믿지 않고 탑을 세워나갔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하느님은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란에 빠뜨려
서로 흩어지게 함으로써 탑건축을 중단시켰다.

관련고증자료들을 보면 7층까지 올라간 이 탑은 1층의 넓이가 90mx90m로서
층이 올라 갈수록 넓이가 좁혀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로 미루어 이 탑이 하늘에 닿기는 커녕 얼마 못올라가 첨탑이 될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수 있다.

신의 뜻을 거슬러 건축하려했다.

이 첨탑이 뒷날에는 사원 건축물의 상징처럼 꼭대기에 올려지게 되었다.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인간의 염원을 표현하는 상징물이 된 것
이다.

모로코 카사불랑카에 있는 세계최고의 핫산2세사원(175.6m)을 비롯
미국의 시카고감리교회(173.1m), 독일의 쾰른대성당(156m), 프랑스의
루앙대성당(147m)등의 첨탑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러한 첨탑이 기념탑이나 관광용 탑, 송신탑등에
원용되어 사원첨탑의 높이를 훨씬 뛰어 넘어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미국의 워싱턴기념탑을 320.75m, 미국 노스다코타주의 TV송신탑은 무려
628m가 된다.

높고 무한한 것을 우러르는 종교적 심성이 진일보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건축물에도 언제부터인가 첨탑을 꼭대기에 세우는 관행이
생겨 났다.

일제는 1921년10월1일 준공된 조선총독부건물에 영구적인 한반토지배를
기원하면서 첨탑을 올려 놓았을런지도 모른다.

그 상징물이 광복50돌을 맞은 어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역사는 오래 지속될수 없다는 교훈을 보여준 하나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