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지난 2~3년간 연속적으로 발생한 대형사고 때문에 우리사회에는 시설물
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 제고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사회체제나 가치관등 무형적인 분야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는 경우는 아직도 많다.

안전성의 문제는 경제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차원의 생활경제에선 실업당했을때나 은퇴후의 생활수준이 현격히
떨어질 위험이 크고 갑자기 돈쓸일이 생겼을때 생활자금융자에의
길이 막혀 있는게 그 예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은 우리의 경우 국민경제가
별로 안전하지 못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국경이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떠들고 있으나 아직도 각국
정부주도의 민족주의 내지 자국인 우선주의,자국산업보호주의,수출지향과
수입억제정책은 주어진 현실이다.

국제분업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잘할수 없는
분야는 전적으로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대신 많은 자원을 우리가
자신있는 부문에 투입하는게 옳다.

그러나 이것은 평화시의 정태적 전략일 뿐이다.

국제관계란 항상 질서있게 맺어지는게 아니다.

긴장의 연속일 수도 있고 정태적 이익이 동태적 손해를 가져오는게
예사이다.

이럴 경우 상대방이 국방 외교 종교 심지어는 환경오염이나 다른
경제부문에서 그들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압박을
가할때 우리가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는 틀속에 있다면 국제분업의
이익을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떠한 유형.무형의 자산과 주권을
회생시켜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리한 외국의 요구를 거절하려면 엄청난 고통을
받을 각오를 하면서 살아가려는 듯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선 저축률과 투자율의 갭이 계속 벌어져도 또 기업에 대한 가계의
자금부족보전율이 70%이하로 떨어져도 별로 걱정을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수준미만인 시절 일본의 가계저축률은
21%까지 올라갔으나 한국은 삼저호황으로 갑자기 떼돈이 생겼을때
최고 17%의 가계저축률을 기록한후 계속 내리막길이다.

지난 1~2년간 이처럼 좋은 해외환경속에서조차 국제수지적자가 싸여도
주로 자본재 수입용이니까 괜찮다는 식의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둘째 우리의 자연조건 때문에 식량자급율 에너지자급률 소재자급률이
낮은 만큼 절약하는 사회체제라도 마련해야 할텐데 이점에서 부감증이다.

부가가치 1단위 올리는데 에너지소비는 2배를 요구한다.

전체 수입액중 자본재의 비중이 81년에 24%수준에서 93년에 36%수준으로
올라가도 태평이다.

중간재의 수입의존도는 10년 전에 비해 다소 떨어진 19%이지만 이도
일본(70년에 3.3%)등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이다.

셋째,시장을 해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해외에서의 쇼크가 있으면 그만큼 더많이 출렁거릴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94년의 경우 GNP대비 수출액의 비중은 37%,수입액의 비중은 38%인데
일본의 경우 14%수준과 대비된다.

더구나 수출금액이 변동하는 요인분석을 하여 보면 주로 수출물량때문이지
수출단가의 위치는 낮다.

또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에의 의존도가 높다.

특정상품 특정국가에의 의존도 또한 매우 높다.

그만큼 수출금액이 흔들거리고 국민경제에 충격을 가할 가능성은
크게 된다.

넷째, 부가가치가 높고 앞으로 시장개방이 불가피한 서비스시장과
관련된 무역외 거래의 비중(대무역거래)은 한국이 25%로서 선진국(미국
53%,일본 73%)에 비해 매우 낮다.

기술수입에 연간 10억달러를 쓰면서 GNP대비 R&D비중은 2.2%에 불과하다.

기술의 대외의존도가 높을게 뻔하고,기술도입방법도 사실은 최신기계
사오는게 주류이기 때문에 응용능력이 제대로 파급되지 않는다.

다섯째,해외투자도 지역별 업종별로 집중되어 있다.

인구밀도는 세계2위에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한나라 정치 경제 사회의 핵심부분이 호전적인 북한의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지 오래다.

산업간의 연관도나 기업들끼리의 전문화 분업체계 또한 형편없다.

독불장군 스타일이기 때문에 국내에의 전파효과는 낮고,외국에서는
공격하기 쉽다.

이상의 특성은 과거 수출주도전략 중화학공업정책의 결실을 빨리
나타내어 보이려고 하는 과정에서 쌓인 현상이다.

나름대로 값어치는 있었다.

주체를 고집하고 안전우선의 전략으로 일관한 북한보다 고도성장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곤란하다.

우선은 가치관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재산이 늘어나면 보험료를 물고서라도 보장을 찾는 원리와 비슷하다.

우리시장은 미국에서 떠오르는 시장( Big Emerging Market )으로
지정하는등 선진외국이 압박을 가해서라도 그들의 이익을 챙기고
싶어할만큼 통통하게 살찐 듯이 보인다.

이럴때일수록 협박에 굴복하기 쉬운 체질은 두고두고 큰 화를 부를
것이다.

평화시의 고성장에 탐닉하다보니까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유지관리
비용이 많이 들고 존립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로 대외노출도와 대외의존도가 심한만큼 외부의 쇼크는 빈발한데
그것이 빠르고 강하게 우리에게 전달된다.

자연히 사회전체로선 외부쇼크에의 적응비용이 커질수 밖에 없다.

거기다가 국내에선 허약체질이 계속 방치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경제는 안전도의 제고를 위해 성장률을 떨어뜨려야
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그럴 각오는 해야한다.

최소한 "성장률둔화=사회적위기"라는 과거 타성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외국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 No "라고 얘기하고 그로 인해 위기가
도래할 때라도 버틸만한 안전장치는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성장과 안전의 조화가 관심사인데 이를 달성할 구체적 실천계획은
과연 있는가.

첫째는 고비용.저효율 구조 타파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국제질서가 험악해도 한국제를 찾도록 만드는게 최선의 안정화 방안이다.

둘째는 다각화이다.

각종산업분야가 균형있고 연관성있게 발전되고 수출지역이나 상품의
다각화,대외거래형태의 다각화,지역적 분산,거래상대방의 다양화
모두가 필요하다.

각종 제도나 정책의 자유화와 시장의 탄력화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행정수도이전이나 강력한 수도권분산정책이 요망된다.

셋째는 핵심장악력의 제고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아지는만큼 외국도 우리에게 함부로 대할수 없게 되는
틀과 사연이 만들어져야 한다.

핵심부품이든 핵심고객이되든 여러분야에서 그야말로 중심역할을 해낼수
있는 능력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키울일이다.

넷째는 경기는 진정시키고 우리 생활규모를 줄이는 일이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는 대외의존도가 비교적 높은게 하나의 숙명이다.

그러나 주체성있는 경제와 자존심있는 생활을 영위하려면 불필요한
대외의존은 피해야 한다.

저축증대 뿐아니라 대체에너지.신소재개발도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분야이다.

재정긴축도 필수적이다.

가격파괴를 위한 규제완화도 필요하다.

금융산업도 약간 추울때 체질은 개선되고 체력이 증강된다.

다섯째는 내부단결을 공고히 하기위한 가치관의 공유노력이 필요하다.

농민과 어민,그리고 중소기업.영세상인.사양산업이나 도태기업이
배출하는 인력들의 경쟁능력제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