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목내동소재 컴퓨터부품 제조업체인 태일정밀은 지난달초 국내
모기업에 컴퓨터헤드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클레임에 봉착했다.

소식이 알려진 것은 퇴근시간무렵인 저녁 6시.

근로자들은 자발적으로 하자를 보완한후 철야작업을 벌여 다음날 새벽녁에
필요물량을 생산해냈다.

클레임을 건 회사도 놀라고 말았다.

정태영 안산공장장은 "걱정이 태산같았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말한다.

근로자들의 회사사랑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태일정밀은 근로자들의 높은 저축률과 낮은 이직률로도 유명한 회사이다.

그만큼 노사관계가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5년근속 근로자의 경우 3천만원의 저축액은 보통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저축률이 높다.

7백50명의 전체종업원가운데 80%이상을 차지하는 여성근로자들의 강한
저축욕과 알뜰한 생활때문이다.

대부분 지방에서 여고를 졸업한뒤 태일정밀에 입사한 이들은 근검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있다.

봉급을 쪼개 고향집에 부치기도 하고 각종 적금을 들다보면 생활비는
그야말로 쥐꼬리만큼 줄어들지만 회사식당과 기숙사 레저공간등 잘 정비된
후생복리시설은 생활비부족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근로자들의 회사사랑만큼이나 이 회사의 복지제도도 남다르다.

회사측은 올해 임금협상에서 그동안 근로자자녀에게 지급해오던 학자금과
별도로 형제.자매에게도 학자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동생의 학비를 부쳐주던 근로자들에겐 상당한 희소식이다.

이회사 근로자들은 결혼이나 불가피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직장을
옮기지않는다.

간혹 임금수준이 높은 회사로 옮기는 근로자들도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동향출신 선후배관계로 맺어진 끈끈한 인간관계는 근로자들의 결속을
다지는 매개체가 된다.

이회사에서 8년째 일하고있는 김향숙씨(26.CD사업부)는 "직장생활이
편하고 자유롭다"며 "노사간의 공동체의식도 높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이회사는 컴퓨터디스크 하드 주기판 프린터등 컴퓨터핵심부품을 생산,
생산량의 70%이상을 미국와 일본등지에 내다팔아 지난해 2천억여원의
매출실적을 올렸다.

설립년도가 83년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속도이다.

지난 91년에는 중국 하얼빈에 5만평규모의 현지합작공장을 설립,세계속의
"태일"을 꿈꾸고있다.

이회사가 협력적 노사관계 속에서 좋은 근무여건과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고있다는 사실은 사내결혼이 많다는 점에서도 찾아볼수있다.

지난해 10쌍에 이어 올해 상반기만 6쌍의 커플이 동료들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노총각인 송기선노조위원장(35)은 "지난 88년이후 노조활동에 매달리느라
장가를 못갔다"고 푸념하지만 "지금까지 전체조합원들의 심부름꾼을 해왔다
는 사실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자랑한다.

정강환사장은 평소 회사식당 영양사들에게 "절대로 계란국을 끓이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무성의한 식단을 짜지말라는 당부이다.

식당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바빠지는 만큼 점심식사가 풍성해진다.

정사장은 "사장이 최후의 노조위원장이라는 각오로 경영에 임하고있다"며
"근로자들을 동생처럼 여기면서 오빠같은 마음으로 돌보려한다"고 경영방침
을 설명한다.

이처럼 부드러운 현장분위기에다 수출역군으로서의 자부심, 회사측의
세심한 배려가 잘 어울려 회사발전에 대한 노동조합과 근로자의 관심과
애정이 솟아나고 있다.

정공장장은 "그동안 근로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노사화합을 위한
왕도가따로 없다는 사실을 느꼈다"면서 "경영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꾸준한 대화로 신뢰가 쌓이면 만사가 풀린다"고 결론을 내린다.

근로자의 회사사랑은 노동조합의 운영방침이기도 하다.

노조집행부는 근로자와회사 양측으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고있다.

전임인 노조집행부간부들도 교섭이 없는 평상시에 현장작업을 하며
동고동락하고있다.

우리나라 사업장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송노조위원장은 지난 5월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모범근로자로 노동부
장관표창을 받기도 했다.

박준순총무과장은 "최근 많은 기업들이 주창하고있는 노사불이운동을
우리는이미 90년부터 해오고있다"며 "우리 회사의 노사협력은 노동조합과
근로자모두의 때묻지않은 순수함을 원동력으로 삼고있다"이라고 말한다.

태일정밀 근로자들은 현장 팀별로 중국 하얼빈의 현지공장을 자주 방문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3천여명의 조선족교포들을 만나 상호정보를 주고받으며
도독한 동포애를 나누곤한다.

이제 막 산업인력으로 편성되기 시작한 교포들에게 협력적 노사관계에
대한이해와 노하우를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있다.

송노조위원장이 지난 5월 현지를 방문,"회사발전을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한뒤 당당히 요구하자"고 강조했다.

태일정밀 노사는 지금 이순간도 세계속의 "태일"이 그리 멀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미래를 위해 뛰고있다.

<안산=조일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