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심리는 "신바람"에 의해 좌우된다고들 한다.

이 점을 강조해 한국문화의 특징을 "신바람문화"로 규정한 학자도 있다.

적절한 동기가 부여돼 일할 맛만 나면 물 불을 가리지 않는 성취욕이
생겨나 불가능한 일이 없고 단결도 잘된다는 얘기다.

한국인의 심성속에 있는 신바람을 가장 유용하게 써먹은 인물들이
바람몰이정치를 해온 과거의 정치지도자들이다.

그러나 신바람은 정치지도자와 대중의 묘한 심리적 결합이 있을 때만
일어나게 마련이어서 무위로 끝날때도 많았다.

5공때 "국풍이라는 행사도 그런것들 가운데 하나다.

신바람은 동기부여가 잘되면 그야말로 현실극복의 무서운 에너지로
승화될수도 있다.

반대로 신바람이 속성은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감성적인 것이어서 그만큼
부작용도 심하다.

대구가스폭발 성수대교붕괴 삼풍백화점붕괴등 최근에 일어난 대형사고들도
60년대 이래 신바람에 의한 "돌진형 근대화"의 필연적 부작용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는 광복50주년 기념행사를 확정 발표했다.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민족의식을 고양한다"는 기치아래 국내외에서
모두 84개의 행사가 펼쳐지는데 정부부처가 주관하는 행사만도 22개에
이른다.

세종로광장에서 5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될 경축식전의 주 이벤트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구조선총독부건물중앙돔 첨탑철거작업이될 모양
이다.

또 당일 저녁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릴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
도 빅이벤트가 될만 하다.

정부는 이렇듯 광복50주년기념일을 전국민의 대대적인 축제로 꾸밀 생각
이지만 정작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야할 국민들의 반응은 냉랭한 것만 같다.

삼풍백화점붕괴에 잇달아 터진 남해한 기름오염은 피해당사자들은 물론
모든 국민을 침울하게 하고 있고 민생을 외면한 정객들의 파벌싸움을 두눈
으로 똑똑히 보고 있으니 신바람이 날리가 없다.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독립만세! 사람들아! 만세다!"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믈을 흘리다가는 소리내어 웃고,
푸른 눈믈을 흘리다가는 소리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소설가 박경리는 "토지"에서 광복의 기쁨을 이렇게 생생하게 그리고
있지만 50년전 그날의 그 감격을 되새기기에는 너무 우울하고 답답하고
무더운 광복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