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만주땅은 우리것! 태평양도 양보못한다"

수저로 장단을 맞추며 골목이 떠나라라고 막걸리 찬가를 부른 다음
당연히 근심이 시작됐다.

"상근이형! 이제 어떡하죠?"

"뭘 어떻게 해! 잘 나오는 볼펜 하나만 있으면 되지"

그러나 오랜동안 밀린 외상빚때문에 그날 "할머니집"술값은 볼펜대신
용감한 이영연(강원대교수)선배의 시계로 해결했고 세월이 4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우리는 그때의 정서로 만난다.

70년대 고대 학생운동권 선후배들이 졸업후 꾸준히 교류를 계속하다
공식적으로 "한백"모임을 결성한 것은 1983년 공주에서 열린 이희원선배
(민주당 유성구 지구당위원장)모친 회갑연때였다.

덕분에 필자는 처음 공주를 가보는 기회를 가졌고 공주관광호텔에서
이기택민주당총재등 많은 선배들과 여흥을 즐겼다.

"열냥주고 집사고 천냥주고 친구산다"는 옛말처럼 좋은 선후배와의
만남은 나에게 두고두고 도움이 됐다.

그후 한백은 등산 세미나등 매달 월례모임을 가져오면서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부부동반으로 유명한 이동막걸리,이동갈비를 먹으러
갔는데 이종면선배(동화은행 여의도지점장)의 춤과 최봉영총무(삼성기획
대표)의 노래가 흥을 돋구었고 막판에는 남녀가 함께 어룰려 제짝을
찾기도 힘들정도였다.

모교에서 있었던 체육대회때는 덩치 큰 유광언선배(정무1차관)가 골키퍼
를 맡아 젊은 후배들의 무자비한 소나기 슛을 용케도 잘 막았고 날쌘돌이
함상근선배(환경관리공단회장)는 배영대후배(중앙일보기자)를 밀어서
쓰러뜨리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백의 활동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회보(계간)를 발간하고 30대의 후배들이 다수 참여했다.

사실 10여년간 월례모임을 거의 빠뜨리지않았고 한 세대를 격한 선후배
끼리 마음을 열고 대화를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점들때문에 한백이 가장 전통깊은 모임의 하나로 자리매김할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분당의 형민선배였다.

"야! 느그들 뭐하나. 개라도 한마리 잡아야 할거 아냐" 하기는 또 때가
된 모양이다.

보고싶은 사람들과 흠뻑 취해 한바탕 세상을 도마질 해야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