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 공항에 내린 몇시간 후에 서울에서 백화점이
무너져내렸다는 참담한 소식을 들었다.

이제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20여일만에 현장이 겨우 정리되었다고는
하나 1,000명이 넘는 사망 실종 부상등 인명피해,그리고 재산피해와
국가적인 망신등 이번 붕괴의 상처는 우리에게 너무나 크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지은지 6년밖에 안된 건물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린 어이없는 일이 예외
인지 아니면 또 일어날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국민들은 이런 일이 또
어디에선가 일어날것이라는 불안감에 젖어있는 듯하다.

이러한 부실공사의 근본원인이 건설공사를 둘러싼 부패의 먹이사슬에
놓여있고,그 결과 공사비의 평균 60% 정도만이 실제 공사에 투입되는것이
사실이라면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어이없는 일이 또 일어날수 있을
것이다.

삼풍백화점과 같이 순식간에 무너지지는 않더라도 현재 서울에 들어서
있는 수많은 고층건물 중에 100년후까지도 끄떡없이 남아있고 또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건물이 얼마나 될까.

몇년전에 주택 200만호건설을 하면서 그만한 수의 주택이면 단군이래
지금까지 한반도에 지어진 총 주택수의 몇분의 1에 해당한다는 자랑을
들은적이 있으나 과연 그때 지은 200만호가 앞으로 몇년간이나 지탱할수
있으며 또 보존될수 있을까.

유럽의 도시들을 다니면서 유럽인들이 과거의 유산을 모시고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로마와 같이 2,000년이나 되는 역사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북유럽과
중유럽의 도시에서도 유럽인들은 수백년된 교회나 건물을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유지하고 있고 또한 많은 돈을 들이고있다.

처음에는 조상을 잘 만나 이러한 문화적유산을 모시고 사는 큰 부담을
안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으나 지금의 서울에서와 같이 미적 가치도
없는 부실건물만 잔뜩 만들어 놓은 우리세대는 다음 세대들에게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과거에는 주로 목조건물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사실 역사적 유물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경주에 석조유물이 조금 있고 서울에 이조의 왕궁이 몇개 남아
있는 정도다.

남한에 있는 그외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지난 30년간에 주로 시멘트로
발라놓은 건물들이다.

우리가 러시아와 동유럽등 구사회주의 국가의 도시들을 가보면 시멘트로
날림으로 지어 놓은 아파트들이 폐허같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게된다.

문득 30~40년후의 서울이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대의 아주 오래된 도시가 버려졌던 이유는 그런 도시들의 유지 보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이들을 버리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어서 그렇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지어야 하겠다는 도시개발철학이 이제
수정되어야 할 때가 된듯하다.

노르웨이에서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과 조화되어 살려고
하는가였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릴레함메르를 가려고 했으나 가보아야 별로
볼게 없다는 것이다.

많은 시설은 행사후에 없앨수 있도록 계획되었으며 일부시설은 지하로
처리했다고 한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또한 자연가까이서 살려고
매우 애를 쓰고 있으며 또한 국민들은 모두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야말로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남한 인구의 10분의1밖에 되지 않는 노르웨이의 모형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처럼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대도시화를
하지 않고 경제성장이 가능한지도 분명치 않다.

우리보다는 소득수준이 세배이상 높은 일본도 결코 노르웨이인의 삶의
질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크게,더 빨리,더 많이"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한 반성을 할때가 되었다.

며칠전 재경원장관이 대통령에게 앞으로 몇년후면 소득이 2만달러가
되고 세계 10위내의 경제대국이 된다고 보고하였다.

20~30년밖에 수명이 되지 않는 부실건물을 더 많이,더 빨리 지어대고
또 부수고해서 국민총생산이 자꾸 늘어나는 경제성장을 계속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어야 하겠다.

지난번에 남산의 아파트 두채를 부수는데 1,000억원이상이 들었다는데
그것도 분명히 국민총생산에 더해졌을 것이다.

부실건물을 열심히 짓고 열심히 부수어서 국민총생산이 높아지는
식의 경제성장을 계속해서 소득이 2만~3만달러가 되면 우리의 삶이
더 윤택해지는 것인가.

정부는 이제는 숫자목표를 세우는 경제계획은 더이상 않는 것이
좋겠다.

2만달러가 되고 세계 7위가 되고 금메달을 몇개 따는가 따위의 공허한
목표가 아니고 국민의 삶의 질에 관한 지표를 찾아서 이를 높이는
일을 정부가 해야한다.

땅을 그대로 놔둔다고 공한지세를 물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을
그대로 놔두도록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래가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야 한다.

이제는 양적 목표보다 질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