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가 가서를 세워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자 보옥이 거세게 반발을 하고
나섰다.

"해결은 무슨 해결? 가서 양반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단 말이야.
숙장님한테 가야 한단 말이야"

진종도 깨진 머리가 아픈지 훌쩍거리며 말했다.

"김영이 여기서 공부하는 한 나는 다시는 이 학숙에 오지 않을 거야"

보옥이 얼른 진종의 말을 가로막았다.

"왜 우리가 김영때문에 여기 오지 않어? 김영이놈을 여기 오지 못하도록
내쫓아야지" 그리고는 이귀를 돌아보며 물었다.

"김영 저 자식이 누구 자식이지? 도대체 우리 가씨 가문과 어떻게
친척이 되는 놈이야?" 보옥의 말투가 더욱 거칠어졌다.

이귀는 당황스런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그,글쎄올시다. 그런 건 묻지 않으시는게 좋은데"

그러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명연이 슬쩍 끼여들었다.

"저놈은 녕국부 가황 나리 마님의 친정조카 되는 놈이에요. 저놈이 가황
나리 마님을 고모라고 부르지요. 뒤도 별로 든든하지 못한 놈이 우리에게
덤빈 거죠.저놈 고모가 어떤 여자인줄 아세요? 혀를 날름날름거려
여기저기서 돈을 뜯어가는 재주만 있는 여자지요"

명연이 혀를 내밀어 징그럽게 날름거렸다.

그 동작은 말재주를 피우는 것을 비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여자들끼리
밴대질하는 것을 흉내 내는것 같기도 하였다.

"이 자식아,입이 찢어졌다고 함부로 놀리는 거 아냐" 이귀가 듣기가
민망하여 버럭 고함을 질렀다.

명연이 이귀의 핀잔에 입을 다물었지만 아직도 분기가 가라앉지 않아
어깨가 들썩거렸다.

보옥이 냉소를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난 또 누구 일가라구? 저놈 고모에게 직접 가서 따져보아야겠구먼.
어떻게해서 그 집안에 남색하는 조카가 있느냐고 말이야"

명연이 다시 기회를 얻어 보옥을 거들었다.

"도련님,도련님께서 직접 가실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가서 말이죠.
대부인이 부르신다고 하여 저놈 고모를 데리고 와서 대부인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문초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이구,이놈아,아가리 닥치지 못하겠어?"

이귀가 참지 못하고 명연을 주먹으로 쥐어박을 듯이 윽박질렀다.

명연이 이귀의 기세에 눌려 멈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가서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하나 궁리하는 표정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