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김영이 휘두르는 대나무 막대기에 진종이 뒷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진종의 머리에서는 시뻘건 피가 흘러나왔다.

보옥이 당황해하며 옷섶으로 진종의 상처를 눌러 출혈을 막아보려
하였다.

하지만 심하게 머리가 깨어졌는지 좀체 피가 멎지 않았다.

이때 바깥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던 이귀가 학숙에서 치고 받고
싸우는 소리를 듣고 뛰어들어왔다.

이귀는 보옥 유모의 아들로 보옥을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자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이귀가 큰소리를 지르며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였으나,제각각 자기들이
옳다고 맞고함을 치며 싸우기를 계속하였다.

이귀는 우선 자기 밑에 부리고 있는 명연과 서약,소홍,묵우들을
학숙에서 나가도록 하였다.

그들이 나가자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사태를 수습할 실마리가
보였다.

보옥이 여전히 진종의 머리를 감싸안은채 이귀에게 지시하였다.

"저 책들을 거두어 넣고 말을 끌고와"

"말이라니요? 아직 하교 시간도 아닌데"

"당장 숙장님에게 가서 고해 바쳐야겠어. 김영이 진종과 향련이 서로
붙어먹었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놀리길래 가서 양반에게
일러바쳤는데,가서 양반은 김영을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뒷짐만 지고
싸움을 부추겼단 말이야.아마 가서 양반은 우리가 김영에게 더 얻어맞기를
바라고 있었을거야"

보옥이 가서를 흘겨보자 가서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귀는 숙장인 가대유 어른에게로 달려가려는 보옥을 말리며 말했다.

"도련님,이만한 일로 숙장 어른께 걱정을 끼쳐드릴것까지는 없습니다.
오늘 여기서 일어난 일은 이 자리에서 해결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이귀는 가서의 잘못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누구든지 잘못이 있으면 단단히 벌을 주어야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보고만 있었습니까?"

"글쎄 나도 뜯어 말리려고 애를 썼는데 말들을 들어먹어야지"

가서가 우물쭈물 변명을 늘어놓자 이귀가 쐐기를 박았다.

"가서님이 평소에 처신을 올바르게 하였다면 학숙생들이 말을 안들을리
있습니까? 이 일이 숙장님에게까지 알려지면 가서님도 책임을 못면할터이니
지금 당장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도록 하십시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