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과 가균은 벼루에서 퉁겨나온 먹물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연적도 깨지고 책도 먹물로 얼룩졌다.

가람은 얌전한 편이었고 가균은 어리지만 겁이 없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도 가균이 참지 못하고 벼루를 손에 쥔채 고함을 질렀다.

"어떤 놈이야? 벼루를 던진 놈이. 네놈이지?"

벼루가 잘못 떨어져 당황해 하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을 향해
가균이 벼루를 도로 집어던지려고 하였다.

그러자 가람이 얼른 가균의 손에서 벼루를 빼앗았다.

"그만 두라니까.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저희들끼리 싸우도록
내버려둬"

하지만 한번 화가 뻗친 가균이 그냥 눌러앉을 수는 없었다.

어디 던질 물건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자기 책상자를 집어들더니
그 녀석을 향해 집어던졌다.

그러나 책상자가 하도 무거워 그 녀석에게까지 날아가지 못하고 보옥과
진종의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다.

책상자가 깨어지면서 물건들이 쏟아졌으니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책이며 종이 붓 벼루들이 나뒹굴고 먹물 범벅이 되었다.

보옥이 아끼던 찻잔까지 박살이 나버렸다.

가균은 보옥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벼루를 던진 그 녀석
에게로 곧장 달려가 멱살을 쥐었다.

김영이 그 녀석을 보호하려고 엉겁결에 손에 닿는대로 벽에 세워져 있는
긴 대나무를 잡고는 휘둘렀다.

장소도 좁은 데다 사람도 많고 하여 김영이 휘두르는 대나무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

가균도 대나무에 맞고 명연도 얻어맞았다.

명연이 얼굴이 찢어져 피를 흘리며 보옥을 따라온 하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너희들은 그렇게 멍하니 보고만 있을 거야? 보옥 도련님도 저렇게
싸우는데"

그러자 소홍, 서약, 묵우들도 우르르 싸움판으로 뛰어들었다.

김영의 대나무를 막기 위해 묵우는 문빗장을 뽑아오고 소홍과 서약은
말채찍을 들고왔다.

탁타악 탁 짜악. 대나무와 문빗장, 말채찍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고, "아이쿠, 아야. 억" 하는 비명소리들도 난무하였다.

"뭐하는 짓들이야?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

가서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싸움을 뜯어말리려고 하였지만 역부족
이었다.

어느새 가서도 대나무나 문빗장에 머리를 얻어맞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책상밑에 들어가 숨어 있기도 하고, 아예 책상위로 올라가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자기편이 아닌 아이들을 뒤에서 슬쩍 주먹으로
쥐어박기도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