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사현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협상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십차례의 협상을 거치고서도 타결이 되지 않아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고 회사측은 공권력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계속됐으나 노사의식이
성숙되면서 지루한 소모전이나 눈치보기식의 협상관행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노사분규의 요인이 됐던 노조의 무리한 요구나 회사측의 터무니
없이 낮은 임금인상률은 거의 찾아볼수가 없다.

노조는 받을 만큼 요구하고 사용자는 줄수있는 한도내에서 최선의 협상안을
제시, 불필요한 신경전을 생략하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의 경우 지난해 노조의 고율임금인상요구와 사용자측의
무성의한 협상태도로 6일동안의 파업을 겪으며 30차례의 마라톤 협상끝에
합의점에 도달했으나 올해에는 11차례의 협상만에 분규없이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이에따라 협상기간도 지난해 3개월 보름에서 올해는 한달에 불과, 협상으로
인한 생산차질을 전혀 빚지 않았다.

이같은 성숙된 노사협상관행은 산업현장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불과 1년전만 하더라도 노사협상은 "노사결투"로 인식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던 동신유압은 지난87년이후 8년만에 처음으로 파업없이 협상을 타결
지었다.

협상때마다 되풀이되는 장기간의 신경전과 파업에 지친 노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협상관행이 성숙됐고 올해는 감정싸움과 신경전을 전혀 겪지
않고 대화로 문제를 풀었다.

노조는 과거 일부 지도부의 주장만을 토대로 20%이상 임금인상안을 제시
하던 것을 자제하고 올해는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 11.4%의 임금인상요구안
을 제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회사도 매년 임금동결을 주장하다 협상이 거듭할수록 조금씩 조금씩
제시율을 높여 갔으나 올해에는 6만9천원이라는 전폭적인 인상안을 제시,
노조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협상을 손쉽게 타결지었다.

노사 모두 1백80도 달라진 협상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회사노조의 박근모위원장은 "과거에는 5차교섭이 끝나면 쟁의발생신고,
파업이란 수순으로 이어졌는데 올해의 이같은 결과는 노사가 한발짝씩
양보한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거 인천지역의 노동운동방향을 결정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던 한라중공업
노조의 협상태도는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88년 노조의 회사점거농성이래 매년 노사분규때면 정문 바리케이드
봉쇄, 관리직사원 출근저지등의 극한 행동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그룹회장의 노사협상 참석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조건 협상을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모습들이 씻은듯 사라졌다.

노조는 올해 회사측과의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아 한때 파업을
벌이기도 했으나 과거와 같은 과격행동은 자제하고 협상테이블에서 대화를
통해 올해의 임금협상을 타결한 것이다.

지난해 장기간 파업을 겪었던 한진중공업 노사는 올해 임.단협전에 별도로
교섭진행방법에 대한 합의를 했다.

합의내용은 대화로 원만히 합의타결하고 교섭분위기를 평화적으로 조성
한다는 것.

마지막 교섭외에는 빨간 머리띠도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협상을 진행
시켰다.

"결렬하고 오만불손했던 노조의 모습은 사라졌다"(임무삼노무담당이사),
"교섭장에서 책상에 걸터 앉고 육두문가 난무하던 예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이우식부사장)

달라진 노조의 협상태도를 바라보는 한진중공업 경영진의 시각이다.

아시아자동차는 무분규조기타결을 목표로 지금까지와는 달리 모기업인
기아그룹의 협상추이를 따르던 교섭관행에서 벗어나 독자적 임금교섭을
추진했다.

특히 이회사는 조기타결을 위해 최초 회사제시안을 기본급대비 6.8%
인상안이라는 높은 수치를 제시했고 주1회씩 갖던 교섭횟수도 주2회씩으로
늘리는등 적극적인 교섭태도를 보였다.

이밖에도 현대중공업,한국프랜지,한국강관등 현대그룹노조총연합(현총련)
소속 사업장을 비롯, 한국웨스트전기,(주)금호,기아자동차등 이른바
노동계내 실세사업장들이 협상횟수나 기간을 지난해보다 크게 단축하며
올해 노사협상을 끝마쳤다.

울산지방노동사무소의 이옥수근로감독관은 "노사의 이같은 변화는 지난
87년이후 여러차례의 노사분규를 겪으면서 소모적이고 파행적인 협상이
노사양측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때문"이라고 분석
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