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로 말하자면 나의 경우 비교적 오랜세월 지속적으로 우정을
다지는 모임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요즘 직장생활과 관련하여
한달에 한번씩 골프를 함께하는 초우회(초우회)라는 모임이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하나은행 서초지점과 거래하는 고객들로 짜여진
소박한 골프동호인 모임인 초우회에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장 몇분과
예금고객 몇분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체로 10여명정도 만나 여기저기 골프장을 섭렵하고 있는 초우회
맴버로는 두원중공업 이재천사장,녹십자양행 박용태사장,로라패션
안혁상회장,제미유통 김현진대표,하나은행 이대입구 한인성지점장등을
들수 있다.

학창을 떠난후 직업상 모인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무슨 우정을 나누고
인생을 담론할까마는 그래도 이 바쁘고 삭막한 일상에서 한달에 한번
만이라도 들꽃이 피고 지는 들판과 옷을 갈아입는듯한 사계절의 변화를
보며 골프장 언덕 멀리 굽이치는 청동빛 산야의 파도를 내려다볼때 우리
초우회원들은 각종 도회지 공해를 털어내듯 후련한 가슴을 열고 혼탁한
정서를 세정하여 각자의 원기회복 또는 일종의 정서순화를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중에도 잠깐잠깐 세상돌아가는 이야기,회갑을 넘은 안회장님의
회춘담,아직 패기 발랄한 이사장의 처녀림 답사론,얄궂은 김대표의 방사론
등이 격의 없이 오갈때는 모두들 박장대소하곤 했다.

이런 대화중에서도 회원들이 무심코 주고받는 중소기업들의 동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수도 있는가 하면 간혹 내가 궁금한 점을 묻기도 하면서
이러한 정보를 취합하여 지점경영에 유익한 정보로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을 알고 난 몇몇 회원들이 한없이 맑은
가을날 암벽밑에서 무리지어 서글프게 미소짓는 구절초를 가리키며
내 시심을 자극시키고 이에 나는 몇구절의 시구를 짓기위해 시정을
발동시키지 않을수 없었던 수줍은 추억도 있다.

라운딩이 끝나고 근처 식당에서 그날의 모임을 마무리할때 이어지는
회원들간의 환담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할수 있다.

수십년 사귀어온 지인처럼 나누는 화기애애한 정담은 나이와 직업,
성격을 초월하여 우리들을 더욱더 가까운 사이가 되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