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부에서 일 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학숙은 원래 가씨댁 옛날 조상들이
세운 것으로,가정교사를 둘 형편이 되지않는 일가친척들의 자제들을 모아
공부시키는 곳이었다.

그 경비는 벼슬이 높고 돈 많은 친척이 주로 대었는데,그 학숙을 책임지고
이끄는 숙장으로는 일가들 중에 연로하고 덕망이 있는 분이 세움을 받았다.

가대유 어른이 숙장으로 수고한 지도 꽤 오래되는 셈이었다.

가대유의 손자 가서도 틈틈이 학숙일을 도와준다고 하였으나,자기
이익만 밝히느라고 제대로 도움되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

보옥과 진종이 학숙에 입학하여 들어가 보니 가용과 가장,설반등
일가친척들이 이미 들어와 공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일가친척이 되는지 알 수 없는 김영같은 아이들도 제법
있었다.

설반은 고향으로 내려갈 형편이 되지 않자 영국부에 눌러앉아 있기로
하고 학숙에도 나오게 되었는데,학숙에 들어오게 된 동기가 불순하기
그지없었다.

설반이 여자들과 어울려 허랑방탕하게 지내다 보니 자연히 여자들에
대한 흥미가 사그라들어 어느새 남색을 즐기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설반이 하인들을 시켜 풍연을 때려죽일 때 풍연의 남색버릇을
놀려대었는데,이제는 자기가 남색에 빠지고 만 것이었다.

그러다가 학숙에 예쁜 남자아이들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공부를
계속한다는 핑계로 들어온 설반이었다.

그러니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학비만 축내며 예쁜 남자아이들을 의형제로
삼는다느니 하며 법석을 떨 뿐이었다.

학숙에는 유난히 여자아이처럼 곱게 생긴 남자아이 둘이 있었다.

학숙 동창들이 그 아이 둘을 여자아이 이름인 별명으로만 부르는 바람에
보옥은 그들의 본명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나는 향련이었고 또 한 아이는 옥애였다.

그런데 설반이 이미 향련과 옥애를 돈과 선물로 유혹하여 남색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학숙에 쫙 퍼져 있어 다른 아이들은 마음이 있어도
그 둘에게 접근할 엄두를 내지못하였다.

보옥과 진종도 꼭 남색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은 아니라 하더라도 향련과
옥애에게 호감이 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향련과 옥애도 설반이 보지않는 데서는 보옥과 진종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호감을 표시하곤 하였다.

어떤 때는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보옥과 진종, 향련과 옥애 네명이서 서로 붙어먹는다는 소문이
돌고 동창들은 기회만 있으면 놀려대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