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사상이 한국처럼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나라가 없다.

여성의 권리와 지위,자유가 그 어느 때보다 신장되어 있는 마당인데도
여아를 경시하고 남아를 선호하는 일반적인 경향이 아직도 엄존해 오고
있는 마당이니 말이다.

70년대 후반에 발표된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이라는 소설에 묘사된 여성
의 처지는 가련하기 짝이 없다.

"시집 간 딸은 데려다 아무리 극진히 해산 구완을 해도 아들을 낳지 못할
때는 죄인처럼 쩔쩔매며 숫사돈을 말아야 하는게 암사돈의 억을한 처지였다"
가계의 계승이 남자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어떻게 해서
라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사실이 여성의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될수밖에
없다.

출가한 여자가 가계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경우 칠거지악을 범하는
것이 되어 이혼의 사유에 해당되었던 옛 악습의 잔해라 할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여성들은 가계를 계승시켜야 한다는 의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채 아들을 낳을 때까지 딸들을 줄줄이 낳는가하면 다남이 곧 행복의
조건이라는 의식의 일반화로 더 많은 아들을 낳으려 하다보니 자연히 자녀의
숫자가 많아질수밖에 없었다.

남아선호사상은 결국 한국의 인구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거기에서 파생된 보다 심각한 문제는 자연상태의 정상적인 남여출생성비
(남자 106명대 여자 100명)를 왜곡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사회적 관습이 조물주가 창조해낸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려 한 것
이다.

그런데 근년들어서 한국의 남여출생성비는 자연상태와 정반대 추세로
나아가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지난 93년에는 여자 100명에 남자 115.6명의 왜곡현상을 드러내주는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남자아이를 가려낳기위한 불법태아성감별 검사가 확산되면서 여자태아의
임신중절수술이 성행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로는 이런 추세대로 나간다면 2010년에는 남자
의 23%가 신부감을 구할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현시점
에서 단선적인 양적 인구억제정책에서 벗어나 성비불균형을 개선할수 있는
사회정책차원의 질적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중심의 가계 계승과 유산 상속을 규정한 현행 친족법의 남여차별을
철폐하는등 획기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지금이다.

전통의 고수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파탄을 막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