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지방자치 출범에도 한 백화점의 대형참사가 국민의 시선과
관심을 한손에 몰아쥐고 있다.

피해면에서 유례없이 참담하고,원인면에서 이 사회의 모든 부조리가
몽땅 집약하여 원인을 제공한 사고인만큼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해도 어쩔수는 없다.

그러나 이럴 때 아쉬운 것은 사안이 중대하면 할수록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대처하려는 마음이다.

급하면 돌아가라는 남의 격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라의 중대사를
졸속으로 처리함으로써 낭패를 부른 사례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다.

주택 200만호 건설 강행만 해도,졸속 외에 위정자의 고집이
작용했겠지만, 미치는 여파가 여간 넓고 깊은게 아니다.

생각컨대 사고의 재발방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과제는 원근적
원인분석의 선행이다.

드러난 이번 사고의 원인은 가깝게 백화점측의 인원대피 불이행,균열
현상의 은폐와 휴업수리의 회피,무리한 증개축 등을 지적할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부실시공이 오히려 원칙처럼 전도된 국내 토목
건축계의 풍토,돈봉투만 건네면 만사형통인 정.관.재의 유착과 부패
만연을 들춰야 하고 근본에 가서는 황금만능의 사회풍조가 원인임을
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러나 원근인들을 모두가 알면서 끝도 없이 되풀이하는
무한 순환에 있다.

어떤 현상에도 악순환의 단절이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이윤동기가 내재하는 사건의 발본색원은
힘든 과제가 아닐수 없다.

애국심과 인간애에의 호소가 눈앞의 소리를 탐하는 인간의 본성을
자제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실시공을 막는 데도 의식개혁이나 기업가 양심의 호소만으로는
백년하청이나, 첩경은 그 부실에 대한 응보가 반드시 원인자에게
되돌아오며 그에 관련된 관의 독직이 예외없이 적발 처벌되는
사회관행의 축적에 있다.

그것도 역시 성선설에만 의지할수 없다.

결국 인간의 이기심을 활용하는 제도적 구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실시공과 그 과정에 개재되는 부패엄단 이상 정도란
없다.

이러한 제도는 일이 터질때 마다 솟구치는 고성만으로 구비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일시적으로 흥분이 고양될수록 일종의 카타르시스 작용을 하여
망각을 빨리 부른다.

이제 할 일은 노출된 원인의 분석을 토대로 전문지식과 책임감을
기준으로 인선,가령 법규 기구 사회의식등 몇개의 임시 전담반을
구성하여 일정 기간내에 구체안을 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
생각된다.

그 방향에 있어 새 법이나 정부기구를 만들기 보다 되도록 현행의
법과 기구를 활용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재해관리청이 없어서가 아니며 형법이 미비해서 부패가 지속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있는 제도나마 공정무사하게 활용해도 일은 반이상 해결된다고 확신한다.

정쟁에 임기를 허송한 국회가 이 하나라도 자청해 완결짓고 물러났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