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나무가지에서 매미가 이슬을 먹으며 울고 있다.

바로 그 뒤에는 매미를 잡아먹으려는 사마귀가 침을 삼키고 있고,또 그
뒤에서는 참새가 눈동자를 굴리며 사마귀를 쪼아 먹을 생각으로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나무아래서는 참새를 겨냥한 소년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한나라의 유향이 편찬한 교훈적 전설집인 "설원"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모두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조금뒤에 닥쳐올 환난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이 옛 이야기를 읽다보면 꼭 우리의 요즘 세태를
그린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사람들의 개개 활동 모두가 이익추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방적으로 우리들에게는 본능에 바탕을 둔 "생존"은 있어도 인간적인
활동에 바탕을 둔 "생활"은 없어 보인다.

우리 선조들은 "중의경재"란 걸을 마음가짐의 첫째 덕목으로 삼고
살았다.

의를 중히 여기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라는 말이다.

흔히 그런 고답적인 사상때문에 500년동안이나 찢어지게 가난한 것을
면치못했다고들 떠넘기지만 그것은 가난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은 결코 아니다.

"이득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한다"(견득사의)라는 말에서도 알수있듯
이익추구의 대전제이자 척도로 "의"를 생각하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예나지금이나 사회의 모든 문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를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익획득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다.

그러나 의에 벗어나지 않고 재물을 얻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본능적인 욕구에 쫓겨 이익만을 추구할 때 그 부는 뜬구룸이 되고
만다.

삼풍백화점 대참사를 불러일으킨 회사의 책임자는 그동안 얼마나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쌓아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회사의 간부들은 사고직전까지 이익만을 생각하고
의를 외면한 것만은 분명하다.

사고직전 건물밖에 있던 한 여직원은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안으로
뛰어들었다가 희생됐다고 한다.

옛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논한다면 그들은 모조리 "도둑의 우두머리"로
다스려져 극형에 처해 질것이지만 전례로 보아 어떻게 처리될지
의심스럽다.

숱한 악이나 불의를 허용해온 사회구조 자체를 뜯어고치지 않는한 몇몇
개인의 선이나 의로움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