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씨가 문을 따고 나오는 순간, 가진이 진씨를 와락 잡아채어 다시
목간실로 밀어넣었다.

"사람 살려" 진씨는 비명을 지르려고 하였지만 이미 가진의 억센 손이
진씨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진씨는 두 눈을 부릅뜬채 자기를 겁탈하려는 남자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남편의 아버지, 시아버지가 아닌가.

"아버지, 저예요. 며느리 진가경이에요. 사람을 잘못 보셨어요"

진씨는 속으로 외쳐보았으나 가진의 귀에 들릴리 만무하였다.

가진은 진씨를 목간실 바닥에 강제로 눕히고 방금 목욕을 하여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 백옥같은 몸을 겁탈하고 말았다.

그제서야 가진이 환각의 기운에서 깨어났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아버지, 어쩌자고 이런 일을 저질렀어요?"

진씨는 벗겨지고 찢어진 옷들을 추스를 생각도 하지 않고 소리죽여
흐느껴 울기만 하였다.

"며늘 아가야, 미안하구나. 내가 죽을 죄를 지었구나.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그 환약 때문에 내가 무서운 죄를 지었구나"

가진은 멍한 표정으로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가진이 정신을 차릴 줄 알았는데 마음이 괴로웠던지
더욱 방탕한 생활로 빠져들고,그 신선환이라는 환약도 끊지 못하였다.

그러니 가용이 일이 있어 집을 멀리 떠나 있게 되는 경우에는 그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가진이 진씨를 범하곤 하였다.

몇몇 하인들과 하녀들은 자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만약 발설을
하는 때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고 가진이 단단히 위협을 해놓았으므로
아무도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진씨의 남편인 가용조차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가진은 워낙 난봉꾼이라 여자의 몸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서 진씨까지도 어떤 때는 남편보다 시아버지를 더 기다리는
적이 있기도 하였다.

사실 가용은 허우대만 멀쩡하였지 여자를 진정으로 만족시켜줄 줄은
잘 몰랐다.

시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마음상태를 느낄 때는 진씨 스스로 목을
매고 죽고만 싶었다.

그러면 자신 속에 도사린 음녀의 기질도 함께 소멸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시아버지와 자기의 관계를 어떻게 알았는지 시아버지 가진이
바람을 피우는 중에 바깥에서 낳은 자식 하나가 그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진씨의 몸을 요구할 때는 정말이지 당장 혀를 깨물고 우물로
뛰어들고만 싶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