녕국부 가용의 아내 진가경이 심한 병에 걸려 영국부 부인들도 수시로
녕국부로 드나들며 진씨 병간호에 정성을 기울였다.

남편 가용도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용하다는 의원들을 데리고 와서
진맥도 하고 희귀한 약도 써보았으나 별 효험이 없었다.

의원들의 진단에 의하면,진씨는 마음을 너무 써 비장이 상하였고 간장의
활동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쳐 월경 불순에다가 신장까지 약해져서 몸이
말할 수 없이 쇠약해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진씨가 병이 든 원인은 마음이 상할대로 상하였기
때문이었다.

진씨는 원래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진업이라는
사람이 자식도 없이 부인이 죽자 진씨를 고아원에서 데려와 양녀로
삼은 것이었다.

물론 진씨 성도 진업의 집으로 와서야 받았다.

진업은 토목공사를 주로 관리하는 영선랑이라는 벼슬을 하면서 진씨를
키우는 보람에 살았다.

진씨는 커가면서 빼어난 미모를 지니게 되고 성품이 곱더니 마침내
먼 친척이 되는 가씨 집안으로 시집을 오게 된 것이었다.

그 무렵,진업은 나이 오십에 첩을 하나 얻어 진종이라는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런데 진씨가 시집을 와서 얼마 안되어 사람들의 입에 차마 담을
수 없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진씨의 남편 가용의 할아버지인 가경 대감은 집안 살림은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돌면서 불로장생약을 만든답시고 온갖 약초들을 캐오고 신선이
된답시고 뜨내기 도사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기들이 특별히 조제한 이상한
환약들을 먹기도 하였다.

그 환약들은 일종의 마약으로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었는데, 환각
작용이 일어날 때는 그야말로 신선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곤 하였다.

결국 그 환약을 가경의 아들인 가진도 훔쳐 먹고 환각을 쫓아 음탕한
짓거리들을 서슴없이 하게 되었다.

하루는 환약 기운에 취한채 집으로 돌아왔는데, 달빛이 훤히 비치는
뒤뜰 쪽 목간통에서 누가 목욕을 하는 기척이 들렸다.

가진은 호기심이 당겨 거기로 가 문틈으로 누가 목욕을 하고 있나
엿보았다.

그런데 며느리 진씨가 백옥같이 허연 몸을 다 드러내고 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목욕이 다 끝나 마무리를 하는 참인 모양이었다.

가진은 진씨가 선계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게 보이고 문득 욕정이
치솟아, 진씨가 문을 따고 나오기를 조용히 숨을 죽인채 기다렸다.

드디어 진씨가 옷을 대충 걸치고 목간실 문을 따고 바깥으로 나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