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외 노동단체소속의 핵심 사업장에서 노조원들이 집행부의 상궤를
벗어난 강경투쟁방침에 반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현상은 새시대
노동운동의 진로와 관련해 주목할만한 변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조 집행부가 쟁의발생을 결의하려 해도 조합원들이 이에 브레이크를
거는가 하면 집행부의 사회개혁요구안에 대해 조합원들이 들고 일어나
임.단 협상안에서 이를 삭제시키는등 일찍이 볼수 없었던 온건.합리적
노동운동의 새바람이 밑으로부터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바람은 민노준등 법외 노동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사회개혁
투쟁과 "6월중순 쟁의집중"계획을 무산시키거나 적어도 약화시킬 것이
확실해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특히 기아자동차 노조원들이 8일 임시총회에서 사회개혁안을 올해
임금협상안에서 삭제키로 표결을 통해 결정한 것은 노사협상을 정치
투쟁화하려는 법외 노동단체들의 기도에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은 중요한
사건이 아닐수 없다.

또 대우조선노조 대의원들이 지난7일 쟁의발생 결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100여개 대형 사업장이 이미 쟁의발생 신고를 해놓은 데다
민노준이 10일께 파업돌입 찬반투표를 실시토록 종용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그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전국 산업현장에서 온건 조합원들이 법외 노동단체와
연계된 강경투쟁을 외면하고 실리추구적인 노동운동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현대자동차의 불법 파업사태와 한 국통신 노조간부들에 대한
정부의 강경책이 국민적 공감을 얻으면서 "여론의 지지없는 강경투쟁은
설 땅이 없다"는 근로자들의 각성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노동현장의 변화를 반기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나아갈 방향과 관련해 몇가지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세계화 시대의 노동운동은 철저히 경제적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노조 집행부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됐다 해도 조합운영이
본래의 목적을 이탈해 사회개혁 투쟁이나 정치적 투쟁성격으로 변모할
경우 노조원 스스로가 이를 용납지 않겠다는 의지가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외부 세력과 연계된 불법 강경투쟁은 더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는 교훈이다.

지난번 현대자동차의 불법 노동단체가 주도한 파업이 대다수 노조원들의
반대와 신속한 공권력투입에 의해 실패로 끝난 것이 좋은 예이다.

이번 기아자동차 노조원들의 사회개혁안 제시철회 결정과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의 무파업서명운동,대우조선노조 대의원들의 쟁의결의안 부결
등은 "밑으로부터의 노조 민주화운동"의 태동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과성 현상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노조도
산업사회의 한 주체로서 기업과 국민경제의 경쟁력강화에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출발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