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전만해도 우리 경제에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기업들은 탈진상태에 빠져 있었고 사회전체가 기력을 잃고 있었다.

외국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 "지렁이로 전락한 용"이 되고 말았다고
비아냥거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우리 경제가 위기에 놓여 있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는 힘찬 박동을 다시 계속하고 있다.

설비투자가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수출도 30%이상
증가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금년도 경제성장률은 9%선이 될것 같다.

물론 경기의 양극화 현상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도 많고 또
국제수지도 적자 폭이 커지고 있어 어두운 면이 없는것도 아니지만 우리
경제가 쾌속성장을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우리는 금년으로 1인당 국민소득 만달러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1,000달러 국민소득,100억달러 수출"을 외치면서 피땀 흘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만달러 국민소득과 1,000억달러 수출"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나라전체로 볼때 먹고 사는것 걱정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하겠다.

머지않아 선진국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도 가입하게 된다.

관연 몇년안에 우리도 선진국이 될것인가.

아니면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선 것인가.

그래서 이제 샴페인을 터뜨려도 좋은 때인가.

이같은 의문이 아직도 꼬리를 물고 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경제의 진면목을 속속들이 살펴볼때 우리는 지금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을때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의 장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는 고비를 넘기고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개인의 인생도 그렇지만 국가도 때로는 고비를 맞게 마련이고 그것을 잘
넘기느냐 잘못 넘기느냐에 따라 구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 고비에서 우리가 시급하게 해야할 일은 세가지로 요약될수 있다.

첫째,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일이다.

선진국들은 사회제도와 관행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나
윤리적인 면에서도 우리와는 비교가 안되는 탄탄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반을 갖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관료주의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
에서는 열심히 규제완화를 한다고 하는데도 기업들은 규제가 완화되지 않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기업들도 윤리적인 면에서나 관행의 면에서 자본주의를 잘 키우고 발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를 망가뜨리는 일을 거침없이 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지켜 나가고 발전시킬 1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기업이 자본주의의 기반 확립에 앞장서야 할때이다.

둘째 생산적인 복지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 주위에 얼마나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들을
보살펴야 할때가 되었다.

그동안은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 일도 힘에 벅찼었기 때문에 주위를 제대로
살필 겨룰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잘산다는 것이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의 외롭고 살기 힘든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을
때가 되었다.

근로능력이 없는 소년소녀가장이나 장애인 그리고 노인들도 인간답게 살아
갈수 있도록 사회전체에 보살펴야 한다.

그리고 일할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최선의 복지
정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칫 복지국가를 지향한답시고 국가가 모든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고
실업자를 먹여 살리겠다는 과욕을 부렸다가는 복지정책에 실패하여 국가
전체에 어려움을 겪는 서구선진국들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 고유의 전통과 가치관 그리고 미풍양속을 잘 살리면서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 일가 친척끼리 우애있게 지내며 또 이웃을 따뜻이 돌보는
우리식의 복지모델을 만들어 나가야할 것이다.

셋째 저금리시대를 정착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금리는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와 비슷한 경쟁국들
보다 2~3배 높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시대에 15%가 넘는 금리를 가지고는 도저히 선진국이
될수가 없다.

임금도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버린 지금 금리가 경쟁국보다 배이상
높아 가지고는 게임이 안된다.

물론 우리의 금리가 높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국민의 현재 선호의식, 높은 수익률, 만성적인 저축부진, 인플레등
금리가 높을수 밖에 없는 이유들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금리를 경쟁국 수준으로 끌어내리지 않고는 기술혁신도 중소기업
육성도 한낱 구호에만 그칠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높은 금리를 부담하고 무슨 재주로 기술혁신을 위한 투자를 할수
있겠으며 중소기업들이 어떻게 채산을 맞출수 있겠는가.

금리를 끌어내릴수 있는 혁명적인 발상전환이 요구된다.

끝으로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

정치와 경제는 뗄래야 뗄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는
항상 정치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의 영향을 너무 받게 되면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과거 정권에서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기겠다는 욕심으로 경제원리를 무시하고
추진한 주택건설정책이 90년대초 우리경제를 어려움에 빠뜨린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좋은 교훈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