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처님은 돼지머리를 좋아한다"

지난53년 동국제강 창업주인 고장경호회장이 부산공장을 지을 때의
일이다.

불심이 깊은 장회장은 고사때 스님을 모셨다.

주위에서 살생을 금하는 것이 불교인데 돼지머리는 치우자고 말하자
"안보이는 부처님만 생각하고 우리 부처(종업원)들은 생각지 않느냐"고
질책하며 한말이다.

이처럼 근로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창업주의 정신이 공장 여기저기
에서 엿보인다.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위치한 노조사무실앞에 회사의 길흉사
전담봉고차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근로자들의 길흉사때 38선이남으로는 언제던지 달려갈 수 있다는
박정태노무관리부장의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다.

박부장은 "노무관리 지침으로 "입사에서 요람까지"를 내걸고 종업원을
내가족처럼 대한다"며 근로자우선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자랑한다.

종업원자녀 우선취업제도도 도입하고 있다.

전체종업원의 5%가 부자 부녀지간 관계다.

노사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다.

노사가 서로를 보는 시각도 남다르다.

"노조가 강해야 합니다"(이학수부산제강소장) "회사의 발전이 곧
근로자 개개인의 성장 원동력이 됩니다"(서복호노조위원장)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바닷가 13만평에 자리잡고 있는 동국제강. 이
회사도 과거에는 "동국사태"라고 불릴 정도로 극심한 노사분규로
시행착오를 겪었다.

격동의 시기인 지난80년 봄. 사북사태등 일련의 사태로 자극받은
근로자들의 분위기 편승으로 부산공장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됐다.

공장이 불타고 도로가 점거되고 관리직은 모두 도망가고 그야말로
산업현장이 전쟁터로 변했었다.

불길이 꺼진후 노사는 냉철히 분규의 원인을 찾았다.

노사는 관리직과 기능직간 심한 차별대우와 불법위장취업자의 개입때문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부터 장상태회장을 비롯한 관리자와 근로자의 변화가 시작된다.

회사는 노조를 동등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근로자들도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

회사는 경영이념에 명시된 이윤의 환원에 나서기로 하고 83년부터
국내 최초로 경기의 변동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87년 다른 회사와는 달리 회사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노사협의회의
발전적 해체와 함께 노조가 탄생한다.

회사의 미래를 논의할 노조의 탄생을 경영자와 근로자들이 진정으로
바랬음은 물론이다.

근로자우선의 정신과 노조의 탄생이 어우러져 노사의 동반자관계는
빠른 속도로 발전되기 시작했다.

근로자 우선의 정신은 새로운 시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근로자들의 해외연수가 바로 그것이다.

외국의 생산현장을 살펴보고 선진노사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7백여명이
벌써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서위원장은 "해외연수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조합원이 매사를 부정적
으로 보는 조합원보다 많아지면서 노사화합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지난91년 노사공동선언문을 발표한후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해 본격적인 노사 협력시대를 열었다.

지난4월에는 잘못된 교섭관행으로 인적 물적 시간적 손실이 많다는
판단아래 선진 노사관계를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 무교섭 임금타결식을
가졌다.

노사협력 정착으로 지난해 안전사고 발생율이 60%나 줄어들었으며
불량율이 떨어지고 생산성 또한 10% 높아졌다.

회사는 이에대한 보답으로 1백65%의 성과금을 지급했다.

이소장은 협력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소장은 "현장의 소리에 귀를 항상 열어 놓아야 한다"고 노무관리의
비결을 귀뜸한다.

이소장은 "1년 3백65일을 교섭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노조사무실과 노무관리팀 사무실은 항상 열려있다.

노사가 하루에 서너차례 상대방을 방문하는 것은 이제 평상의 일이다.

서위원장은 회사쪽 편만드는것 아니냐는 오해의 소지도 많이 받았으나
조합원들이 믿고 따라 오늘날의 성과를 얻었다고 밝힌다.

이 회사 노조위원장방에는 "행백리자반구십리"의 문구를 담은 액자가
걸려있다.

"백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리를 반으로 봐라". 어떤 일이던지 최선을
다하자는 뜻이다.

노조위원장방에 걸려있는 초라한 액자의 문구가 더욱 빛나 보이는
건 왠일일까.

<부산=김문권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