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옥은 그 다음,작은 외삼촌인 가정 대감에게 인사를 하려 간다.

어느 방으로 들어서니 정면에 걸린 큰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쪽빛 바탕에 붉은 구리로 아홉 마리 용을 새겨넣은 그 현판에는
"영희당(영희당)"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한쪽 옆에는 영국공 가원에게 하사한다는 작은 글자와 함께 황제의
친필임을 표시하는 어보가 찍혀 있었다.

뿔없는 용을 새긴 커다란 자단목 받침대 위에는 석 자 남짓한 오래된
청록빛 구리솔이 얹혀 있었다.

벽에는 비오는 날 바다 물결과 함께 솟구치는 검은 용이 웅장한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옆에는 금으로 장식한 술단지와 유리잔들이 놓여 있었다.

대옥은 잠시 그 유리잔의 아름다운 빛깔에 마음이 빼앗겼다.

그 당시 유리잔들은 멀리 외국에서 수입되어 온 것으로 진기한
물건들이었다.

또 방안에는 녹나무로 만든 의자들이 양쪽 벽을 따라 열 여섯 개씩
놓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검은 오목나무판에 은으로 새겨넣은 대련이 걸려 있었다.

어는 것 하나 정교하지 않은 것이 없고 우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대옥은 기품 있는 그 방의 분위기에 젖어 연신 방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가장 대감의 아내 왕부인은 보통 때는 이 방을 쓰지 않고 동쪽
세 칸짜리 곁방에 거처하고 있었으므로,할멈들은 대옥을 그 방으로
데리고 갔다.

왕부인은 서쪽 아랫목에 놓인 청단 사방침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대옥이 들어오자 동쪽 자리를 권하였다.

대옥은 어린 마음에도 그 자리는 작은 외삼촌인 가정 대감 자리겠거니
하고 사양을 하고는 의자로 가 않았으나,왕부인이 굳이 끌어당겨 앉히는
바람에 그 자리로 가 앉게 되었다.

"작은 외삼촌은 오늘 재(재)를 올리러 가서 안계시는구나,다음에 차차
뵙도록 하지 뭣. 네가 이렇게 왔으니 우리집 아이들 이야기나 해주어야
겠구나.

우리집에는 세 딸들이 있는데 한결같이 착한 편이지. 그러니 그애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바느질도 배우도록 하여라. 같이 놀기도 하고 말이야.
아무쪼록 의좋게 지내야 하느니라"

왕부인이 말한 세 딸들이란 왕부인이 낳은 원춘과 가정 대감의 첩
조이랑의 소생인 탐춘, 환들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 누님들과 잘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대옥은 착한 누나들이 셋이나 된다고 하니 은근히 마음이 놓였다.

왕부인은 대옥의 손을 잡아 좀더 끌어앉히며 이번에는 아들 보옥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