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 있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무기한 연장키로 한 유엔 회의의 결정은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특히 북한이 미국과의 핵협상을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178개 회원국이 표결이 아닌 전원일치 방식으로 핵확산 방지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천명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이번 회의는 25년간의 발효기간이 만료된 NPT를 놓고 핵보유국을
중심으로한 무기한 연장안과 일부 비동맹국들의 시한부 연장안이
맞서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결국 강대국들의 주장대로 결말이 났다.

원론적으로 보아 핵의 무제한 확산을 항구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강대국들이 핵독점을 배경으로 국제사회에서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현실을 놓고 볼때 NPT를 시한부로 연장하면서 이들의 핵관련
행동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비동맹권의 주장은 나름대로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는 핵독점국들이 이번 회의에서 비동맹국들의 양보를 얻어낸
대가로 그들이 국제 사회에서 져야할 책임이 얼마나 무거워졌는가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무엇보다 핵독점국들이 핵무기를 완전 폐기한다는 목표아래 내년까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을 맺겠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키길 촉구한다.

현재로서는 NPT가 핵확산을 막고핵군축을 성사시킬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고는 하나 핵보유국들에만 배타적으로 핵주권을 허용하는
불평등조약임에는 틀림없다.

핵보유국들은 이번 NPT의 항구화를 핵독점의 항구화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냉전시대의 "핵우산"론 따위로 개도국의 핵개발추진을 막을수는
없다.

핵개발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핵보유국들이 핵폐기에 솔선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다음 핵실험에 대한 국제적 응징수단을 강화하고 그 철저한 이행이
뒤따라야 한다.

핵보유국들은 툭하면 핵실험을 무력시위나 정치.경제적 카드로 악용하는
버릇을 탈냉전시대에도 버리지 않고 있다.

막무가내인 중국의 핵실험이 그렇고 "시뮬레이터 핵실험을 그만
두고 실제로 핵실험을 하겠다"는 시라크 프랑스대통령 당선자의
선거공약이 그렇다.

그런데도 말리거나 응징할 수단을 갖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핵보유국들에 대한 감시도 형평을 잃고 있다.

북한핵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일본에 대한 감시가 너무 소홀하지
않나 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느낌이다.

한술 더 떠 러시아는 이란에 핵개발 기술판매를 강행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이 모든 핵통제의 난맥상은 핵독점국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핵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핵보유국들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핵보유국들이 NPT의 연장에 들인 힘의 절반만이라도 모아 국제
핵폐기조약 같은 기구를 만들어 볼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지름길을 두고 돌아갈 이유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