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공 가원의 후손들을 보더라도 그 형편은 녕국부와 어슷비슷
하였다.

가원이 죽자 맏아들 가대선이 작위를 이어받아 금릉 제일 명문 가문인
사씨댁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가사와 가정 두 아들을 낳았다.

가대선이 죽을 때 유서를 황제에게 올렸는데, 그 유서가 황제의 마음을
감동시켜 황제가 친히 두아들을 불러들였다.

황제는 장남인 가사에게 가대선의 작위가 이어지도록 했을뿐만 아니라
차남인 가정에게도 주사라는 벼슬을 내려 관부에 들어가 견습을 받오록
하였다.

그리하여 가정은 원외랑(원외랑)이라는 높은 벼슬에까지 올랐다.

가정의 부인 왕씨는 세남매를 낳았다.

첫째는 아들로 이름이 가주인데, 스무살이 되기전에 장가를 가서 아들을
하나 남기고는 일찍 죽고 말았다.

둘째는 딸인데 신통하게도 정월 호하룻날에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을 가원춘이라 지었다.

셋째 아이가 태어날 때는 왕씨의 진통이 보통때와는 달리 몹시 심했다.

엄청나게 큰 아이가 태어나려나 보다 하고 왕씨는 이를 악물고 진통을
참아내었다.

산모가 아이의 머리를 받으면서 깜짝 놀라 외쳤다.

"아이의 머리가 오색찬란한 빛에 싸여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찬란한 빛은 아이의 입안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럴 수가. 아이가 옥구슬을 물고 있군"

산모는 아이의 숨이 막힐까 싶어 급히 입안에서 구슬을 끄집어 내면서
아이를 받아내었다.

그 구슬에는 글자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으니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구슬을 물고 태어났다 하여 아이의 이름은 가보옥이라 지어졌다.

사람들은 그런 소문을 듣고 아이가 장차 범상치 않은 인물이 될것이라
수근거렸다.

특히 보옥의 할머리, 그러니까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직도 정정하게
살아계시는 사씨부인이 보옥을 정말 진기한 보배처럼 사랑하고 아꼈다.

그런데 보옥의 돌날 아버지 가정이 아이의 성향과 장래를 알아보기
위해 잔치상 위에 여러가지 물건을 벌려놓았을때 실망스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보옥이 그 하고많은 물건들 중에 연지와 백분 비녀 반지 팔찌 같은
여자들의 화장도구나 장신구들만 골라 집었던 것이었다.

"이 놈은 장차 주색에 빠질 난봉꾼밖에 되지 못할 것인가"

가정은 크게 화를 내며 언짢아하였다.

다른 식구들도 보옥의 장래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씨부인만은 그럴리 없다고 하면서 여전히 보옥을 애지중지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