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년전 "조어대전"을 쓴 월튼은 그 책의 부제를 "명상하는 사람의
레크리에이션"이라고 달아놓았다.

중국에서는 이보다 까마득한 옛날인 3,000여년전에 이미 낚시를 "호연지기
를 기르는 수련"으로 여겼다.

낚시꾼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주나라 문왕때 사람 강태공은 물고기를 낚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 아니라 낚시로 호연지기를 기르며 세월을 낚았던
인물이다.

봄이 한창 무르익은 요즘같은 절기에 도시에서 뚝 떨어진 한적한 저수지가
에 낙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라.

물위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하늘높이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의
울음소리가 정겹고 초목의 새순이 돋아 연초록으로 물든 건너편 구릉아래서
밭 가는 농부의 소 모는 소리가 구수하게 들린다.

고기낚는 것을 아예 잊어버린 낚시꾼은 아름다운 자연에 마음을 낚여버리고
만다.

무념무상이라고나 할까.

"조선일여"라는 말도 게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고기를 낚는 멋은 취하더라도 고기를 취하지는 않는다(취적비취어)는
공자의 낚시철학도 이해할만 하다.

"청강에 낚시넣고 편주에 실렸으니/남이 이르기를 고기낚다 하노매라/
두어라 취적비취어를 뉘라서 알리오"

"청구영언"에 실려 있는 송종원의 시조 한 수를 되뇌어보면 진짜 낚시꾼의
그윽한 멋을 한껏 느낄수 있다.

옛사람들에게 낚시는 마음수련의 한 방법이었고 낚시터는 그 수련의
도장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거기서 자연을 낚고 마음의 건강을 낚았다.

낚시가 현대인들의 취미활동의 하나가 된지도 오래다.

그러나 낚시인구가 400만에 이를 정도로 각광을 받게 되자 여러가지 폐해가
심각해졌다.

수질오염도 문제지만 어족도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이제는 이미 낚시가 "명상하는 사람의 레크리에이션"이란 말이 무색해졌다.

환경부가 낚시면허제도를 도입, 어족보호와 수질보전에 관한 일정한 교육을
받고 면허료를 납부한 사람에 한해 낚시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낚시면허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낚시애호가및 환경단체에서 필요성을 주장
해온 것이기는 하지만 국민여가생활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인간이 자연을 생각없이 파괴해온 결과
끝내는 자연과의 접촉마저 제한당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등산도 면허를 받아야 다닐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