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한 통상공세가 협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압력의 단계를
벗어나 감정섞인 위협의 차원으로 확대되는 느낌이다.

한.미 무역실무회의가 결렬되자마자 유통기한 문제를 즉각 WTO에
회부하기로 결정하고 한국을 지적재산권 우선감시 대상국으로 재지정한
것만 봐도 미국의 보복적인 태도를 엿볼수 있다.

불과 한달 사이에 미국은 한국의 수입관련제도 2건을 WTO로 끌고
가려 하는 것이다.

WTO출범후 지금까지 제소사례가 모두 3건밖에 안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의 대한 통상자세가 얼마나 감정적인 것인가를 쉽게 알수
있다.

이러고도 직성이 안풀렸는지 이번에는 미국의 한국시장 접근을
방해한다고 생각되는 통관 검역 식품위생과 같은 2차 수입장벽전반에
대해 WTO에 문제제기를 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례별로 WTO에
회부하기 보다는 한국의 수입관련 제도자체를 한꺼번에 몽땅 WTO의
도마위에 올리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볼수 있다.

미국의 무차별적인 WTO 제소위협은 클린턴 행정부의 강성 통상정책기조에
비춰볼 때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미 고위 통상정책담당자들은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의 통상정책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냈고 각종 통상관련 보고서를 통해서도 한국에
대한 비난과 불만을 털어 놓았기 때문이다.

또 직접적으로 한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자국상품의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국의 불공정무역 관행에 대해서도
자국법을 적용해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사까지 표명한 상태다.

클린턴 행정부가 수출확대를 통한 무역적자 축소에 정권의 사활을
걸고 있는만큼 앞으로 미통상정책은 더욱 강경쪽으로 치달으리라는
사실은 쉽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미국이 최대의 대미 무역흑자국들인 일본 중국은 제쳐둔
채 왜 적자국인 한국만을 유독 두들기고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한국을 WTO에 잇따라 제소함으로써 한국을 본보기로 삼아 전세계
수출시장에 대한 위협을 가하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미국의 대한공세가 무차별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우리
정부의 협상자세가 너무 연약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그저 밀리기만 하는 협상대상국이었을
게다.

일본의 경우 현재 미국의 자동차시장 개방압력에 WTO제소라든가,미국상품에
대한 관세인상 위협으로 맞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얼마전 미국의 WTO 제소결정에 맞대응하기로 강경방침을
세운 것을 계기로 고질적인 대미 저자세 통상외교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 12위의 무역국이다.

그만큼 WTO 분쟁당사국이 될 여지가 많다.

분쟁이 생기면 WTO에서 떳떳이 가리겠다는 의연한 자세와 함께 WTO제소에
대한 대응방안을 한시 바삐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