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통상정책은 그 나라가 처한 경제여건과 정책과제에 따라
변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자유세계의 무역규범인 GATT의 다자간 무차별
원칙을 기본적으로 지지해 왔지만 통상정책의 내용과 방향은 미국이
처한 여건에 따라 꾸준히 변해왔다.

전후 패권국으로 세계경제에서 차지했던 압도적 지위를 배경으로
자유무역질서 창달에 앞장섰던 미국은 70~80년대를 거치면서 보호조치를
사용하였고 공정무역을 앞세워 교역상대국에 대한 쌍무적인 개방압력과
미국내통상법에 의한 일방적 차별적 무역조치를 강화해 왔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경제의 재건을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대내적으로는 고용증대 효과가 큰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나가고
대외적으로는 정치 외교적 이익을 중시하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것을 통상정책의 최우선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통상협상에 있어서는 단순한 시장개방보다는 미국상품의
시장점유율 확보와 이행상태를 추적하여 실리를 챙기는 결과지향적
통상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통상정책 수단도 다자 지역 쌍무협상을 병행해 나가는 한편 슈퍼301조
부활,반덤핑 상계관세등 미국의 통상법상에 열거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통상정책의 기조를 변화시킨 데에는 미국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경제다국화의 진전으로 미국의 위상이 낮아진데다
무역적자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미국내에서도 기업과 노조의 입장이 강화됨에 따라 자유무역의 이익
보다는 보호조치의 가시적 이익을 보다 중시하게 되었다.

향후 미국의 통상정책 기조는 미국의 위상과 경상수지적자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90년대초 균형상태에 달했던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최근들어 GDP의
2.2%까지 악화되었고 적어도 수년간은 2%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미국의 지위도 동아시아 국가의 높은 성장과 유럽경제의 재부상으로
남은 기간에도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다자협상과 쌍무채널간의 양자택일보다는 현재와
같이 상황에 따라 상호보완적으로 운용할 것이다.

분야별로는 미국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농산물과 금융 통신등
서비스 분야의 교역자유화와 지적재산권 보호,외국인투자 환경개선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적으로는 아.태국가에 대한 통상압력이 집중될 것이다.

아.태국가의 수출은 대부분 미국을 향하고 있어 미국은 필요시 수입규제
라는 강력한 수단을 쓸수 있고 미국과의 무역흑자 때문에 여타 지역에
비해 미국의 개방압력이 쉽게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아.태지역의 막대한 인구와 높은 경제성장을 감안할때 21세기에
미국의 가장 큰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미국의 통상정책 방향에 비추어 볼때 최근 미국의
대한통상압력은 이미 예견된 사항이고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현재 한미간 통상현안으로는 식품유통기한,통신장비 형식승인,자동차시장
개방등이 남아있다.

특히 과거에는 경미한 사항이었던 자몽 오렌지의 통관문제가 검역당국의
무책임한 행정과 정부의 안이한 대응으로 WTO에 제소당하고 우리국민의
건강까지 무시되는 "선통관 후검사" 제도를 수용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최근 미국의 대한 통상압력은 어떤 연유에서 야기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미국의 통상정책 기조변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부족을 들수
있다.

미국은 한국을 종래처럼 국제무역상의 의무를 면제받는 개도국으로
간주하지 않고 아.태지역에서의 중요한 동반자로 삼고 있다.

반면 우리정부는 대미무역균형과 영업환경개선회의(PEI),경제협력대화기구
(DEC)의 성과에 의거해 한미관계에 있어 낙관적인 견해를 가져왔고 최근
미국의 대한 통상압력도 경제력이 약한 국가에 개방을 강요하는 "힘의
논리"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미국은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세계화 계획이
실질적인 시장개방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있다.

오히려 공무원의 경직된 의식구조등을 들어 미국내에서는 "제2의
일본"으로 간주하는 성향이 높고 일본처럼 미국의 압력이 있어야
시장을 개방하는 국가로 보고 있다.

따라서 한미간 통상마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는 미국의
통상기조를 정확하게 파악한후 이를 바탕으로 양국간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시장개방도 단순히 미국과의 통상마찰 해소라는 소극적 차원에서 벗어나
우리경제의 체질개선과 한미관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우리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되 각종
제도와 법령은 국제규범과 한미간 이익을 균형있게 고려하여 개선해
나가야 한다.

과거 UR협상과 최근 오렌지의 통관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막판에
선진국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우리국민에게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안겨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경제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미국과의 통상마찰은
불가피하다.

미국의 불공정무역행위에 대해서는 WTO의 분쟁처리절차를 적극 활용해야
할것이다.

물론 높은 대미 의존도를 감안할때 일방적으로 다자채널을 이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다자협상을 통해 쌍무협상에 있어 취약한
우리의 협상력을 보완해 나갈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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