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효제 < 자동차노련위원장 > ]]]

근로자 12년 단위노조조합장 9년 연맹부회장 9년 연맹위원장 2년등 도합
31년동안 운수근로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건전한 노동조합활동을 전개해왔다.

지난 89년부터 전국 16개지역 대단위 단체교섭 및 6대도시 시내버스 공동
임금교섭활동을 벌여 지난 5년동안 노사분규와 조직분규를 사전 예방하는데
공헌했다.

특히 운수근로자들의 염원이었던 장학회와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해 실질적인
혜택을 줌으로써 조합원들이 운수근로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안전운행 및
산업평화유지 선봉에 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91~94년 조합원자녀 8천56명에게 지급한 장학금 총액이 31억26백만원에
이른다.

지난 86년 3월부터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위촉받아 근로자들
의 이익을 대변했다.

특히 세계화추세와 맞춰 국제노동자단체와의 인사교류를 전개함으로써
근로자들의 선진의식화에 앞장서왔다.

특히 지난 93년에는 영국 미국 일본 독일등 교통운수분야 노조의 단체
협약서를 국제운수노련(ITF)으로부터 제공받아 번역 배포함으로써 조합원의
근로조건개선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 산하 전조직의 중간간부들에게 국제화시대를 맞아 해외연수의 폭을
넓혀가는데 박차를 가해 노사협력체제구축에 기여했다.


[[[ 장재천 < 우성모직 사원 > ]]]

우성모직의 전신인 한국모방에 지난 66년 입사한이래 외고집으로 한 직장을
지키면서 투철한 직업의식과 장인정신으로 회사발전과 후배양성에 노력해
왔다.

방적과 조사제조공정현장에서 오래동안 근무하면서 경험과 기술을 익혀
기계소리만 듣고도 이상유무를 진단할 수 있는 탁월한 기능인이다.

지난 86년말 서울 신대방공장에서 청주3공단공장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제방공장설비와 기계장치등 11t트럭으로 5백여대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을
3개월동안의 짧은 기간에 옮기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수많은 기계장치를 손에 동상을 입어가면서까지 분해 조립 가동과정에서
한치의 오차도없이 정확하게 진행되도록함으로써 시간단축에 성공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또 정방기등의 자동화기계의 라인재배치로 70%의 인원감소효과를 얻었으며
회전속도향상으로 10%의 생산성제고효과를 얻어내 경쟁력강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밖에 자연보호의 취지를 인식하고 사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KT-5운동
(정리,정돈,청소,청결,습관화)에 적극 참여, 작업환경개선에도 공헌했다.


[[[ 최태일 < 전력노동조합위원장 > ]]]

노.사.정간의 협조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88올림픽 최종 점검당시 해외출장중인 위원장을 대신해 본부부위원장으로
수차례 설득과 조율을 통해 전기원의 농성 해결을 주도했다.

지난해 1월 정부제시안수준에서 임금협상을 조기에 타결했다.

지난 91년과 93년에는 노사간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단체협약을
순조롭게 타결시켰다.

새로운 노동조합정책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합원의 의식개혁과 노동조합운동의 활성화를 목표로하는 희망(청) 활력
(적) 신뢰(백)의 "3색운동" 정책개발을 추진했다.

지난 90년 12월 전조합원의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나서 자발적 의식개혁,
조직구성원의 행동변화, 노사화합의 매체지향등을 내용으로 하는 3색운동을
정책에 반영했다.

노동운동의 국제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제교류를 활성화, 선진노사관계와 비교연구에도 나섰다.

근로조건향상에도 노력해 주택구입자금을 추가로 확보, 수혜대상를 크게
늘렸다.

또 사업안전보건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산재율을 크게 낮춰 쾌적하고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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