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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세계무역기구)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한편에서는 ''신토불이''
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외래''에 대한 ''내래''의 대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먹거리(식량)분야에서
특히 이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밀 옥수수등 곡류수입은 이미 상당한 규모이고 요즈음 들어서는 이름도
생소한 과일은 물론 나물 채소까지 다른 나라의 것이 밀려오고 있다.

식품과학자 인계 권태완박사(64)를 서울 서초동 자택으로 찾았다.

그는 유치과학자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식량자원연구실장을
시작으로 부소장을 거쳤고 한국식품개발연구원 발족에 기여, 초대원장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교수로 한국콩연구회장 대통령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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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쓴 글을 모은 수상집중에 "원숭이의 먹거리 산책"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 제목의 원숭이는 무슨 의미입니까.

<> 권박사 =별 뜻은 없고 내 띠가 원숭이띠예요. 그냥 먹거리산책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내가 뭐 먹거리에 대해 다 아는양 비칠수도 있고 또 남들이
오만하다고 생각할것 같아 원숭이라는 말을 앞에다 붙인것입니다.

-"먹거리"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같습니다. 식량이란 의미로 해석해도
괜찮은지요.

<> 권박사 =식량이라는 낱말 주변에 연상되는 몇가지 낱말들이 있습니다.
"식품" "식료품" "음식" "곡물"등입니다. "식품"은 "식량"과 같은 뜻으로
서로 바꾸어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식량보다 작은 범위로 구체적인 품목을
지칭하는 수가 많지요.

"식료품"은 조리직전의 품목을,또 "음식"은 조리가 끝나 식탁위에
올려져 곧 먹을수 있도록 된것을 연상하게 될겁니다.

영어에서는 푸드 ( Food )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고 신축성있게 쓰이고
있고 불편도 없는 것같습니다.

따라서 영어의 "푸드"에 해당되며 우리가 이미 쓰고있는 낱말들간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 "식량"대신 순수 우리말로 "먹거리"라고 쓰는게
바람직하다는 제안도 있어요.

하여튼 사람이 먹을수 있는 모든것을 먹거리라 할수 있습니다.

수분이 없는 음식은 있을수도 없고 물없이는 끼니도 먹을수 없을만큼
사람은 물없이는 살수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물"도 식량의 한
성분으로 봐야 마땅합니다.

오염으로 수돗물을 기피하고 생수다,탄산수다해서 물을 상품으로
사서 먹는 인구가 늘어나니 물도 식량대열에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는듯 합니다.

-KIST에서 식량분야관련연구를 오래 하셨다는 기억이 있어서 그곳에다
박사님의 현재 연락처를 물으니까 대학에 계신다고 하더군요. 인제대교수
로는 언제 가셨나요.

<> 권박사 =KIST에서는 아주 오래 있었지요. 그러다가 한
국식품개발연구원이 설립되어 초대원장으로 갔어요. 그 자리의 임기가
3년이에요. 첫 임기가 끝나기 하루전날 그만두라는 통보가 왔어요.

평생처음 실직을 두달쯤 했습니다. 그러고는 고문으로 있으라고 해요.

고문으로 있다는게 큰 구실하지 않으면 오히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곤 해서 1년쯤있다가 지난92년봄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유치과학자로 들어오시기전 미국대학에서 쓴 연구논문이 "네이처
(Nature)"지에 실렸고 또 KIST에 계실때 연구결실의 하나인 "개량곡간"
등은 유엔산하기구에서까지 높은 평가를 해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연구에 대한 욕심과 집념이 대단하신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요즈음은
어떠하십니까.

<> 권박사 =연구보다는 강의쪽의 일이 많다고 봐요. 젊은교수들하고
팀이 돼서 한국과학재단의 연구프로젝트를 하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젊은 사람들이 주로 할 일이지요.

내가 새로 살림차려서 연구실 만든다는것도 그렇고 젊은 교수들
중심으로 하도록 합니다.

-대학에서는 화학을 공부하신걸로 압니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식량.
식품 분야연구에 집중하시게 됐습니까.

<> 권박사 =나는 화학을 공부하려고 서울대 문리대이학부에 들어갔지요.

그때가 1950년이었습니다.

6월19일 입학식을 했고 첫 강의는 6월26일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전날 6.25가 터졌고 26일 우리는 둘째시간강의를 끝마칠수가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그후 10년이 넘도록 종군하게 됐습니다.

그때 나는 아무리 무기가 좋아도 배가 고프면 싸울수 없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됐어요. 그래서 오늘날까지 식품과학과 씨름하게 된 것입니다.

식품과학 한다니까 처음에는 여자들이나 하는 공부를 남자가 하고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우리나라의 점잖은 사람들이나 지식층은 먹는것은 주로 여자들이나
관여할 일로 여기고 남자들은 그저 먹고 맛이 있다 없다는 말도
안하지요.

-먹거리분야연구자로 오랜 생활을 해오셨는데 어리석은 질문하나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WTO다 뭐다해서 외국 먹거리가 밀려들어온다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동안 먹거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연구하고
했느냐하는데 자신이 없는것 같습니다.

또 먹거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농업따로,식품산업따로 식으로 연계가
안돼왔고 식품안전과 국민보건은 또다른 쪽의 일로 생각돼온 것
같습니다.

<> 권박사 =보통은 식량이 부족한 나라에서 국가가 먹거리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2차대전 이후에는 영양과잉이라는 측면에서 국가가 식량문제를
다루는 사례가 나옵니다. 노르웨이가 그런 나라중의 하나입니다.

복지국가로 국민들이 배불리 잘 먹고 영양도 좋아지는데 오히려
의료비가 늘어나는 것이에요.

그 원인이 뭣때문이냐 하는 것에 국가가 관심을 갖게된 것이죠.그래서
영양과 식량문제를 처음으로 국회가 다루게 됩니다.

이에 영향받아 미국도 상원에서 "맥거번보고서"로 알려진 바와같이
국민보건과 식량.영양문제를 국가정책으로 다루게 됐습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 성인병 심장병 등으로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식생활을 이렇게하라,저렇게하라 계도하는 정도에 이른 셈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먹거리와 관련해서 우선 농업과 식품산업에 대해 한가지
꼭 하고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농.축.수산물은 즉시 소비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얼마동안 저장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가공을 하는 식품산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시각에서볼때 식품산업은 농업의 연장선상에서 봐야합니다.

농업을 1차산업이라고 하면 식품산업은 1.5차 산업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모든 나라의 식품공업 발달은 농업에서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식품과학과가 대부분 농과대학에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식품산업이 농업의 연장선상에서 발전해야 식품산업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농민에게 돌아갈수 있습니다.

선진농업국에서는 농민이나 농업단체들이 식품산업에 원료를 공급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상황은 농촌이 점차 분해되고 농업은 외국농업에 계속
밀려나면서 식품산업과의 연계가 더더욱 힘들다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 권박사 =나는 사실 우리나라상황이 걱정스럽습니다.

식품공업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우리농업이 공급하는 원료는 그
비율이 줄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식품공업은 원료를 외국에 의존하는 형태로 커가고 있고
기슬도 외국의존형입니다.

또 상품의 형태는 어떠냐 하면 우리전통것이 아니라 외래식품 또는
좋게 말해 국제식품들입니다.

빵은 어느나라나 먹으니까 외국원료에 외국기술에 외국제품들이 단지
한국이라는 땅에서 생산되는 꼴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식품공업계와 농업이 이같이 관련이 없는 나라는 전세계에
없습니다. 식품공업에서는 계속 외국원료를 쓰기를 원할 겁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지금은 그래도 농산물을 직접 조리해서 먹고있으나
이것도 줄어들게 될것이 분명한데 그러면 국내 식품공업과 농업(농민)이
아마 큰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농업 또는 전통식품등에 기반을 둔 식품산업이 대외경쟁력을
가질수 있겠습니까.

<> 권박사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일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부분적으로 전통식품의 수출산업화는 가능합니다.

마시는 식혜가 가공식품으로서 시장이 아주 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덕연구단지 만들때 그곳에 식품연구소를 세우자고 했어요.

그때 준비만 했더라도 오늘날 크게 걱정을 안하게 됐을텐데 어쨌든
식품연구를 강화해야 합니다.

-지난번 정부조직을 바꿨지만 식품행정차원에서는 미흡했던 것도
있을텐데요.

<> 권박사 =행정의 일원화는 필요합니다. 농림수산부정책이 생산위주
였고 보건복지부는 농업생산과 무관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번 정부에서 축산.낙농을 농림수산부로 끌어들인 것은 잘 한
것입니다. 식품산업에 대한것도 관장부처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 대담 = 강영현 과학기술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