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의 아내 봉씨는 남편마저 행방불명이 되자 살아갈 소망이 끊어졌다.

어린 딸 영련을 잃어버리고 집까지 태워먹고 친정집으로 내려와 이 눈치
저 눈치 보아가며 고생 고생하고 있는 판에 남편이라는 사람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다니.자신의 신세와 운명이 이다지도 얄궂은가 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떤 날은 집뒤에 있는 회나무 가지에 목을 매고 자결하려고 하다가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결국 봉씨는 집과 땅을 팔고 친정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봉씨는 기회가 있을 적마다 사람들을 만나 다시
사은의 행방을 수소문하였다.

어떤 사람은 사은이 실성을 하여 헛소리를 중얼대며 저쪽 산등성이를
넘어갔다고도 하고,또 어떤 사람은 깊은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고도
하였다.

그런 소문들 중에서도 사은이 어느 도인을 만나 따라갔다는 말이
그래도 신빙성이 있는것 같았다.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자기가 직접 목격했다고 하면서 자초지종을
소상히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도인이 신선 노래를 계속 부르자 사은이 넋이 나간 얼굴을 하더니
그냥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어떤 신선 노래인데요?" 봉씨가 사은이 종종 신선 꿈을 꾸곤 하던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세상 사람들이 신선이 좋은 줄 다 알면서도 어쩌고 하는 노래인데,
공명도 부귀도 가족의 정도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고 흥얼대었지요.

사랑 많던 아내도 남편이 살았을때 하늘처럼 섬기지만 남편이 죽자마자
다른 남자 따라간다,하는 대목도 있었지요.

그런 노래를 들으면 세상만사 허무하게 여겨져 신선의 세계로나
들어가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리 없지요. 진사은 선생은 그렇지
않아도 늘 신선이 되기를 꿈꾸던 분이 아니오?"

"그래요. 능히 그러실 분이지요"

봉씨는 이제 사건의 전말을 알 것 같아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살림을
꾸려가는 일에 힘쓰기로 하였다.

교행과 또 한 명의 몸종과 더불어 밤낮으로 바느질 품을 팔아 간신히
연명해나갔다.

친정아버지 봉숙은 딸이 남편도 없이 그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행여나 재물이 축이 날까 싶어 모른체 하였다.

하루는 바느질 일을 끝내고 봉씨와 두 몸종이 냇가로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목욕을 하였다.

세 여자는 노골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몸이 닿는 감촉을
은근히 즐기고들 있었다.

오랫동안 남자의 몸을 접촉하지 못한 세 여자들이라 욕정이 쌓일대로
쌓여 폭발하기 직전에 이른 듯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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