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운하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고대중국의 대운하를 머리를 떠올리게 된다.

북경에서 항주에 이르는 총길이 1,781km의 이 운하는 백하~황하~양자강을
연결한 것이다.

BC540년부터 1327년까지 무려 1,900년 가까이되는 세계 최장의 공기가
걸린 대역사였으나 완성이 있은 뒤인 775년에 어것을 묻어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1869년 개통된 수에즈운하의 전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대그리스에서도 코린드운하가 건설되었고 영국에서도 120년에
포스다이크운하가 개통되었다.

내륙운하의 건설이 특히 활발했던 때는 18~19세기의 산업혁명기였다.

유럽에서는 위슬리탄광~맨체스터 사이의 브리지워터운하(영국)를 비롯
라인강~엘베강사이의 미텔란트운하(독일), 독일의 루르지방~프랑스의
로렌지방 사이의 모젤운하, 라인강~다유브강 사이의 루드비히운하, 볼가강~
돈강 사이의 볼가돈운하(러시아)등이 건설되었고 북아메리카에서는
슈퍼리어호~휴런호 사이의 세인트 마라 운하, 허드슨강~이리호 사이의 이리
운하, 이리호~몬테리호 사이의 웰란드운하, 미시간호~미시시피강 사이의
일리노이미시간운하등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오랜 옛날에 운하건설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

고려 인종때인 1134년 충남서산군 태안반도의 가로임만과 적돌만을 있는
가적운하 건설공사를 시작했다가 중단한 뒤 고려의 공민왕과 조선조의
태종때 2차레나 공사를 재개했으나 실현을 보지 못했었다.

근래에도 경민운하 건설계획을 비롯한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대운하
구상이 나온바도 있었다.

때마침 문경 새재에 운하용 터널을 뚫어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를
건설하는 경우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수 있다는 연구제안이 나와
대운하구상을 현실화시킬수 있는 꼬드리를 마련해 주었다.

철도와 고속도로등 육상수송수단의 발달에 따라 상대적으로 운하의 가치가
감소되어 온 마당이지만 아직도 국내물자수송에서 수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귀를 기울여 볼만한 제안인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