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무역기구(WTO)가 금년 1월초 공식 출범한데 이어 지난달 정부는 선진국
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총성없는 경제전쟁''은 막이 올랐고 한국은 세계속으로 한발 더 다가서게
됐다.

선진국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경제에는 예측불허의 상황변화가 전개
되고 있는 셈이다.

무한경쟁 돌입으로 특징지워지는 WTO시대.

한국경제가 헤쳐나갈 과제는 무엇이고 우리 기업과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한국경제신문사는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는 좌담회
를 마련했다.

좌담회에는 박진근 연세대교수(사회), 박운서 통상산업부차관, 김태준
수출보험공사사장, 방상길 고합물산사장이 참석했다.

전문가들의 진단과 처방을 정리한다.
=======================================================================

<> 박진근교수 =지난1월 WTO체제가 출범한지 100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일반국민들이야 큰 변화를 못 느끼고 있지만 수출기업들은 적지않은 환경
변화를 경험하고 있지요.

우선 WTO출범에 따른 국제무역여건 변화와 국내기업에 미치는 영향등을
짚어보는게 순서일것 같습니다.

<> 박운서차관 =WTO의 출범은 명실공히 국경없는 무역전쟁이 시작됐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나라들이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허물고 동등한 입장에서 무한 경쟁을
벌이게 된 거지요.

이같은 경쟁에선 비교우위와 같은 과거 무역결정이론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인 우위가 아니라 절대적인 경쟁력 우위를 갖춰야만 살아 남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또 기업들은 정부의 "보호막"을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각종 정부
보조금이 철폐됐고 과거처럼 특정 업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인더스트리
타깃팅 전략등을 쓸 수도 없게 됐습니다.

유치산업 보호차원의 지원도 불가능하게 됐고요. 이밖에 무역분쟁 해결
절차가 명료해지고 반덤핑 요건이 강화되는등 "경기 규칙"이 분명해짐에
따라 국제교역환경이 맑고 투명해졌다는 것도 큰 변화중의 하나입니다.

<> 김태준사장 =WTO 출범은 한국경제 전반에 "밝고 어두운" 영향을 동시에
미치겠지만 수출입만 놓고 보면 이득이 많습니다.

재정경제원 산하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각국의 관세.비관세장벽
완화로 한국은 금년부터 오는 2004년까지 10년간 총225억달러의 수출증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반면 농산물을 포함한 수입확대 효과는 같은기간중 72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결국 150억달러 이상의 무역흑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WTO 출범으로 세계 교역량이 크게 늘어나면 특히 한국과 같은 대외지향형
국가들은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부수적인 이득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방상길사장 =전체적으로 볼때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많을 것이라는데 동감입니다.

그러나 기업들 입장에선 적지 않은 어려움도 예상되지요. 특히 수출기업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든다는게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정부는 무역금융이나 수출손실준비금등 13개의 보조금을 금지보조금으로
분류해 앞으로 3~5년안에 철폐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 보조금의 규모는 연간 7,000억원에 달합니다. 이같은 지원이 사라지면
국내 수출 중소기업등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되지요.

또 현재 204개가 지정된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궁극적으로는 풀지 않을수
없게 된 것도 문제입니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수입선다변화 품목은 대부분
컬러TV 캠코더등 중요품목이 많아 이것들이 일시에 풀리면 국내산업에
악영향을 미칠게 뻔합니다.

더구나 한국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뒤지는 농산물과 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확대해야 하는건 한국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습니다.

<> 박교수 =WTO는 단순한 제품 교역뿐만아니라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외국인투자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게 특징이기도 하지요.

이런 분야들에서도 한국은 거센 개방의 파고를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지재권 보호만 보더라도 국내기업들엔 큰 부담이지요.

예컨대 작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 컴퓨터프로그램의 보호기간은
현행 창작후 50년에서 창작자의 사후 50년간으로 연장됐습니다.

가장 일반화된 컴퓨터 프로그램인 도스(DOS)는 빌 게이츠가 19살때 개발
했지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100년정도는 더 보호를 해주어야 하는 셈입니다. 또
지재권을 침해하면 피해금액의 15배이상을 손해배상해야 하는등 제재도
강화됐습니다.

지재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국내기업들은 자칫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게 된거지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보다 면밀히 검토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게
이제 남은 과제라면 과제라고 할 수 있겠죠.

<> 박차관 =WTO체제에 대한 대응책은 단 한가지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총체적인 경쟁력 강화입니다.

이젠 기업 국민 정부 모두 첫째도 경쟁력, 둘째도 경쟁력이란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어떤 나라 기업에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만 갖추면 세계시장은 우리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시장만 여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시장도 똑 같이 개방되기 때문
입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한 경쟁의 주역은 역시 기업들 자신입니다. 경제전쟁의 최일선에서
보병으로 뛰고 있는 기업들이 신바람 나도록 정부와 국민이 옆에서 함께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 김사장 =국내에 투자한 외국기업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로 잡는
것도 시급합니다.

한국에 투자한 기업은 우리기업이란 생각을 갖는 것이야말로 세계화의
첫걸음이지요.

그동안 한국에 투자했다 철수한 많은 외국기업들이 "한국민의 배타적인
대외국기업 인식"을 문제로 지적하는걸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최근 엔고는 일본의 첨단기술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호기임에도
국민들의 인식부족으로 일본기업들이 대한투자를 꺼리고 있지 않습니까.

국내기업이든 외국기업이든 한국이야말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도록 각종 투자환경을 개선하는게 절실합니다.

<> 방사장 =어떤 환경변화에 부닥쳤을때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외교역이나 통상관계등에서 과거와 같은 수세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는게 긴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로 기업들의 다자간.다국간 제휴를 들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조기술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내기업이 첨단기술을 보유한 선진국 업체와
손잡고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에 동반 진출하는 것등이 한 모델이 될 수
있겠지요.

이같은 다국간 전략적 제휴는 계량화 할수 없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런 효과는 비단 외국기업과의 제휴에서만이 아니라 국내 대기업과 중소
기업간의 협력관계에서도 노려볼 수 있지요.

<> 박교수 =이젠 정부의 역할이나 기능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WTO
협정에 따른 정부역할의 축소만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요.

새로운 수단과 기능을 찾아 적극 활용하는 노력도 게을리 해선 안될
것입니다.

세계교역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 변화를 제시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박차관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에 밑거름이 되는 기술개발을 지원하는게
우선이겠지요.

기술개발에 관한한 WTO협정에서도 정부지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산부는 금년중 4,500억원을 기술개발자금으로 지원하고 산업기술대학을
설립해 기업들에 양질의 기능인력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중 입니다.

또 기업들의 "얼굴 있는 수출"을 위해 자기상표개발을 적극 지원할 작정
입니다.

최근 이탈리아의 구찌사가 뉴스의 초점이 되기도 했지만 자기상표의 성가를
쌓는 것이야말로 세계시장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요.

이밖에 해외에 나가 있는 국내 기업들의 현지화도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언젠가 국제회의에서 싱가포르의 지도자 이광요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중국의 개방구인 광동시에는 신흥 부자들이 많이 생겨 롤렉스등 고급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지역에 나가 있는 싱가포르의 어떤 기업은 왼쪽 소매가 3~4 정도
짧은 와이셔츠를 만들어 팔아 성공했다고 하더군요.

비싼 시계를 차고 있다는걸 은근히 과시하고 싶어하는 현지 수요자들의
입맛에 딱 맞춘 거지요.

이말을 듣고 "이게 바로 현지화구나"하며 무릎을 쳤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도 현지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려는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정부도 이에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 방사장 =정부와 민간기업이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계시장 진출에서 민관이 함께 마케팅에 참여하는 형태의 협조가 긴요하다
는 말이지요.

이런 예는 선진국에선 얼마든지 찾아 볼수 있습니다. 우리정부가 고속전철
차량을 선정할때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과 독일의 콜수상이 한국을 방문해
자기나라 회사의 제품을 팔려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뛰었습니까.

이젠 우리 정부도 민간기업과 손발을 맞춰 해외시장전략을 짜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합니다.

무한 경쟁에서 이기려면 민관이 합동작전을 펴야 한다는 거지요.

<> 김사장 =WTO체제에서야 어차피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간접지원수단을 활용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간접 지원수단으로 대표적인게 바로 수출보험이지요. 수출보험은 WTO협정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국내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킬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수출보험공사는 올해부터 농수산물수출보험과 시장개척보험등을
신설하는등 국내기업들이 수출보험을 보다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수출보험기금도 현재 1,593억원에서 오는 97년까지 5,300억원 정도로
대폭 늘릴 계획입니다.

전체 수출에서 수출보험의 혜택을 받는 수출비중인 보험활용률을 작년말
6.7%에서 금년중 10%수준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오는 97년께는 이를 16%까지 향상시킬 목표를 세우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정도의 수준도 선진국에 비하면 크게 낮은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수출보험활용률이 40%에 달하거든요.

<> 방사장 =기업들도 수출보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단지 부담스러운 비용으로만 여겼었는데 이제는 만약의 수출사고
위험을 막아주는 아주 긴요한 방패막이로 생각하고 있지요.

앞으로 수출보험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다양화될 기업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선 새로운 보험상품개발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지요.

<> 박교수 =수출보험도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WTO이후 그린라운드 대두등 또다른 환경변화는 새로운 위험부담으로 작용
하지요.

이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수출보험의 변신도 긴요하다는 얘기지요.
한국의 교역규모는 세계 13위인데 과연 이를 뒷받침하는 수출보험은 활용률
이나 경쟁력 면에서 어떤가 한번 되짚어 볼 필요도 있다는 겁니다.

기업들의 인식제고를 위한 지속적인 홍보활동도 긴요하겠고요.

< 정리=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