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사상공장 주물부문 근로자들은 지난 92년 임.단협 때 "환경수당"을
요구했다.

위험한 작업환경을 임금으로 보전하라는 주장이었다.

일리있는 요구라고 판단한 인사담당자는 본사에 보고했다가 불호령을
들었다.

위험요인을 그대로 방치한채 임시방편용 "위험수당"을 줄 수 없다는
이헌조회장(당시 부회장)의 질책이 떨어졌다.

LG전자 사상공장은 시설개선비로 5억원을 투입,작업환경을 새로
꾸몄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8월 3천만원을 들여 "소장님의 옛친구"라는
교육용 영화를 만들었다.

갓 입사한 근로자가 현장소장으로부터 산재를 당한 옛동료의 얘기를
들으며 안전의 중요성을 깨우쳐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영상으로 대리체험한 근로자들의 안전의식은
자연 높아졌고 산재발생율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현장 위험요인이 증가함에 따라 안전의식고취와
안전시설확충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현대전자는 노사합동 안전점검팀을 설치,전부서를 대상으로 점검활동을
하고 그 결과를 분기별 종합안전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인력난을 겪고있는 중소기업 중에서도 안전시설확충에 열의를 보이는
업체가 많아지고있다.

구미의 염색업체인 일성기계는 레이저절단기를 도입,수작업당시의
재해요인을 크게 줄였다.

이 회사 최종석노무담당과장은 "작업현장에 위험요소가 없어야 근로자들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업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은
1.18%로 아직 일본과 대만의 0.39% 및 0.45%(92년기준)에 크게 밑돌고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연간 산재건수는 지난 84년 15만7천9백85건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나 93년 한해동안 8만8천8백17건에
달했다.

특히 산재사망자수는 75년 1천6명으로 1천명을 넘어선 이후 증가세를
계속해 지난해에도 2천6백여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숫자도 믿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근로자들의 얘기다.

사용자측이 산재다발 사업장으로 분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반의료보험
으로 산재사고를 처리,보고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93년1월~94년8월중
각 기업의 산업재해 은폐건수가 4천6백건에 달했을 뿐만아니라 91년7월
~93년 2월중에는 실업계 고교의 현장실습생 가운데 1백63명이 산재를 당해
그중 21명이 사망했다고 폭로,충격을 주기도 했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 고도화,새로운 유해공정의 생성 및
유해물질 사용량증가로 산업재해가능성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그러나 작업환경개선과 산재문제는 매년 임담협에서 산업계의 현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사양측으로부터 협상우선순위에서 제외되고 있다.

특히 노사양측에 산업안전을 중시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마인드 자체가
형성되지 않아 산재는 좀체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의 산재보고는 끊이질 않는다.

최근의 사고는 특히 한번 일어나면 대형사고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7일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수리선박화재사고에서는
19명이 사망했다.

현대중공업 노조관계자는 지난해 작업도중 외주업체 6명을 비롯,
작업도중 모두 12명이나 사망했다고 전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작업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전체 재해의 73.5%가 중소기업의 재해다.

관리인력의 부족으로 안전교육 여건이 특히 나쁘다.

"라인특성상 찰과상 및 화상의 위험이 있고 소음도 무척 심하다. 손이
달리다보니 사전주의교육없이 취업직후 바로 현장작업을 시키기도한다"
(한국합섬 황영호노조위원장) 재해는 근로자 한사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들은 심적 물적 고통을 겪고 같은 작업장의 동료근로자들도
동요한다.

그의 일은 동료에게 부과되고 그가 맡던 기계는 멈추고 만다.

회사로서도 큰 피해인 셈이다.

이처럼 산재예방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조성하자는
당위성에 입각해있는 만큼 노사 양측이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집행부는 임단협에서 임금과 고용보장을 메달리고 산재
예방을 심각하게 요구하지 않는 형편이다.

사측도 사고가 생길 때 마다 한건씩 처리하고 있을 뿐 근본적인
예방책 마련에는 아직까지 소극적인 편이다.

노동전문가들은 이 문제의 해결에도 키는 사용자에게 있다는 주장을
편다.

고객만족(CS)경영의 출발점이 내부고객(종업원)만족도를 높이는데
있음을 강조한다.

근로자들이 안심하고 일해야 매출도 늘고 생산성도 늘어난다는 인식을
갖고 사용자가 안전투자를 늘릴 때 회사의 발전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재해는 보상적 임금수요가 발생하고 이직의 증가로 기업의 입장
에서 볼 때는 커다란 비용증가를 의미한다. 기업의 산업안전투자에 대한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경상대 송기호교수)

노사가 함께 합리적 기업경영과 인명존중차원에서 재해예방의식 및
안전문화를 생활화하도록 해야한다.

사업장은 노동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는 "생활의 장"이지 부상과
죽음에 불안해야하는 "전쟁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