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이 좋다고 해서 예천이라는 고을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자기 고향에 향수를 느끼지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소백산맥자락
출신인 산골사람들에게는 예천이야말로 정신적 메카(Mecca)이다.

예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물맛"말고 또 있다.

활과의 인연니 수백년이 넘는다.

가깝게는 우리나라 양궁계의 여왕으로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비롯
하여 여러차례의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어 국위를 만방에 떨친
김진호양(결혼후 지금은 양국지도자로 후진양성에 헌신중)을 들지 않을수
없다.

김진호국수의 모교인 예천여고는 당시 양궁의 산실로 연일 화제에
올랐었다.

4백년전 이조선조대왕 재임시 일어난 임진왜란에서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에
맞서 싸운 조선군의 비장의 무기이던 활의 제조공장도 바로 예천에 있었다.

우리 모임은 예우회(8.15해방직후 예천농업중학에 입학했던 1회동기생으로
서울에서 살고있는 친구들의 모임).

김진호금메달리스트의 아버지인 김종국형은 예우회명예회원.

김형은 예천에서 큰 인쇄소를 경영하면서 동기회총동창회장으로 동분서주
하고 있다.

회원중에는 전문경영인 정계원로 언론계 교육계중진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제지업등 자영으로 짭짤하게 재미본 친구도 더러있다.

레저시대가 한반도에 열풍처럼 밀어닥칠 것을 예견, 강릉에서 요식업으로
기반을 닦은 동작빠른 이창우형도 있다.

예우회는 부정적기적이지만 자주 모여 관악산을 오르거나 고궁에서 고적을
답사한다.

회원중 특이한 두사람을 소개한다.

중국교포인 도기환형과 전KAL조종사 최병호형.

도형은 현재 중국연변에 살고 있으나 고향걸음이 잦다.

중학교 3학년때 공산주의에 심취, 의용군에 자진입대하여 대구 팔공산
전투중 맨발로 평양까지 걸어갔던 사나이다.

북한정권을 따라 중국까지 쫓겨 갔다가 중국연변지방에 정착했다.

중학교 영어교사로 일하던중 문화혁명때 남한출신이라는 이유로 반동분자로
몰려 10여년간 사막지대에 유배돼 풍상을 겪기도.

한때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던 그도 이젠 이데올로기를 초탈한 평범한 초노의
중국소시민의 모습으로 우리예우회원들 앞에섰다.

그는 "잃어버린 젊음"을 아쉬워했다.

KAL의 베테랑 조종사출신의 최병호형.

그는 8년전 KAL항공기를 공중폭파시킨 북한의 여간첩 김현희가 탔던
항공기의 다음편 항공기를 조종해 같은 코스를 비행했다.

만일 바로 전편의 KAL기를 조종했더라면.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그는 생환의 행운에 감사하는 뜻에서 예우회일동에게 푸짐한 잔칫상을
차렸었다.

이래저래 소백산맥사람들의 모임인 예우회는 화제가 끊이지 않아 좋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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