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방으로 들어와 보았다.

습인을 비롯한 시녀들이 보옥을 깨워 일으켜 앉혀놓았다.

보옥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채 어진혼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진씨는 보옥에게 어떻게 가경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느냐고 물으려다가
시녀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시녀들에게 계원탕(계원탕)을 달여와 보옥에게 먹이도록
지시하였다.

"계원탕이라면?" 습인이 진씨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계원이라고도 하고 용안이라고도 하는 그 검은 갈색 열매 있지 않으냐.
껍질에 혹들이 불쑥불쑥 돋아나 있고 말이야. 그걸 푹 달여 얼음조각을
몇개 띄워서 가지고 오너라.진정제나 강장제로는 그게 제일이니라"

"아,용안이라면 잘 알지요. 곧 달여 오겠습니다"

시녀들이 물러가자 진씨가 수건으로 보옥의 이마의 땀을 훔쳐주었다.

그러다가 밤꽃 냄새 같은 이상한 냄새가 나서 살펴보다가 진씨는 그만
수건을 떨어뜨렸다.

"에그머니나" 진씨는 얼굴이 발개져서 방을 슬며서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보옥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몸을 벽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얼마후 시녀들이 계원탕을 달여가지고 보옥에게로 와 마시게 하였다.

다른 시녀들은 들고 왔던 약그릇을 다시 가져나가고 방안에는 보옥과
습인만이 남았다.

"계원탕을 드시니 어떠세요?" 습인이 두살 아래인 보옥의 표정을
살피며 염려스러운듯 물었다.

"한결 나아졌어.휴우" 보옥이 정신이 돌아오는지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나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려고 하였다.

"가만 계세요. 허리띠가 다 풀어졌군요. 제가 허리띠를 매어드릴게요"

습인이 보옥의 허리띠를 매어주려다가 그만 손이 미끄러져 보옥의
허벅지께에 가 닿았다.

허벅지를 덮고 있는 바지천에 무언가 끈적끈적한 것이 묻어 있었다.

"아니,이게 뭐예요?" 습인이 흠칫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손에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려 하자 보옥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면서 슬쩍 습인의 손을 꼬집었다.

"아야.도련님,왜 이러세요?" 그 다음 순간 이번에는 습인의 얼굴이
발개졌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것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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