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그룹의 부도로 계열금융기관인 충북투자금융이 부도위기에
몰리자 정부는 충북투금의 업무를 한시적으로 정지시켰다.

금융기관에 대한 업무정지명령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예금자들에게 준 충격은 상당한 듯하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베어링그룹의 파산도 연상되면서 부실채권의 규모가
3조원에 가까운 우리 시중은행들은 과연 안전한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설마 은행이 망하랴 하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기는 하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등 선진국에서도 " too big to fail "이라는 원칙이 있다.

일본에서는 "은행불도신화"라고 부른다.

너무 덩치가 커서 파산을 시키는 경우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 정부가 구제해줄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 은행을 일시적으로 도울수는
있으나 이로인해 은행종사자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지고(책임의식
저하) 모험적 경영을 하는 경향이 있어 금융시스템의 안정이 오히려
취약해진다는 주장이 있다.

금융시스템이 취약해지면 은행파산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때문에 미국에서는 91년에 FDICIA (연방예금보험공사개선법)를
만들어 95년이후는 " too big to fail "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은행업에도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바와
같다.

금융기관의 파산은 경제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므로 가급적
이를 막으려는 경향은 어느나라에나 있다.

그래서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강조하다보면 작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막기위해 중앙은행까지 동원되는 경우도 생긴다.

영국에서는 지난73년초 한 대금업체의 부도를 막으려고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협조를 구했다가 거절당하는 바람에 중앙은행의 대출까지
동원했던 사례가 있다.

금융질서유지는 규제권자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그렇다면 규제하지 않으면 책임도 그만큼 면해지는 것일까.

금융이 자유화되면 금융기관이 자기책임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하는게 원칙이다.

그러나 금융질서는 경제전체질서의 한부분이기는 하지만 경제전체의
안정에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는데 정책당국의 고민이 있다.

이번 충북투금의 경우를 보면 정책당국이 신속하게 개입해 예금보험기구인
신용관리기금에 자금지원기능을 떠 맡겼다.

일본에도 대장상대신이 부도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의 업무정지를
명하는 경우 예금보험기구가 자금지원을 할수 있는 근거가 예금보험법에
명시되어 있다.

충북투금을 파산시키기 보다는 제3자에게 인수시키는 방안이 고려될 듯한
데 이것도 일본식 "자금원조를 동반한 합병"(assisted merger )과 비슷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수의 금융기관이 동시에 위기에 처하거나 큰 은행이
도산할때는 적용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원칙적으로는 비용최소화의 원리에 따라 파산을 시키고 보험금을
지불하는 것과 자금지원을 해서 살리는 방법을 비교형량해야 옳다.

그러나 파산이 초래할 해당지역의 혼란을 방지하자면 불가피성의
원리에 따라 자금지원이 우선되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중소형 금융기관의 경우는 한 두기관의 부실이 전체업계의 신인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들 금융기관은 어느나라나 대개 금융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감독기능의 사각지대가 되었는 경우가 많고 리스크관리능력도
취약한 것이 공통점이다.

그래서 이들을 일일이 구제하기 보다 시장원리에 따라 파산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파산을 시키자면 절차법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는 연방예금보험법등이 금융기관 파산처리에 관한 특별법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해당금융기관에 대한 설립인가권자가 파산관재인을 파견해서 파산절차를
진행시킨다.

상업은행이 파산하는 경우는 연방예금공사(FDIC)가,그리고 은행이외의
저축금융기관인 경우 정리신탁공사(RTC)가 관재인을 임명하여 절차를
진행한다.

연방정부가 파산처리를 할때 지켜야할 몇가지 원칙들이 있지만
파산할 금융기관이 소재하는 지역사회의 혼란을 최소화해야한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혼란을 최소화하는데 너무 비중을 두면 집행유예가 남발되어
시장원리가 무너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재범을 막론코 무조건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금융기관의 파산을 결정함에는 신용질서유지,시장원리의 적용,사회적
비용,처리절차의 공평성,일관성,투명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금융기관의 경영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판단되면
조기시정조치을 명하는 미국식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파산처리에 관한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회사의 파산절차를 규정한 회사정리절차법과 비슷한 "금융기관 정리절차법"
의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또 연쇄부도를 막을수 있도록 결제시스템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와함께 예금자보호를 위해 예금보험기구의 기능을 확충함은 물론
위험에 따라 부담을 달리하는 가변적 예금보험요율제도를 도입해
위험에 대한 자기부담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