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논쟁이 한창이다.

생산과 투자가 늘고 실업률이 낮아지면서 경기과열여부를 놓고 재계와
정부간의 시각차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경기논쟁을 지켜보는 중소기업들은 참으로 답답하다.

남의 나라 얘기이기 때문이다.

부도는 천장을 모른채 늘고 자금난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2월 중소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9대시책을 내놓았다.

중소기업대책은 신정부들어서도 여러번 나왔다.

그런데도 중소업계는 여전히 갈증을 풀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가.

최근엔 중소업계를 대변하는 기협중앙회의 회장이 새로 선임돼 중소업계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높다.

황승민 진양회장(60)은 지난 30여년동안 중소기업을 몸소 경영해왔고
프라스틱조합이사장 5년, 기협중앙회장을 3년 역임하는등 현장과 협동조합
활동경험을 두루 갖춘 몇안되는 사람중 하나이다.

황회장을 서울 신림동에 있는 진양서울사무소로 찾아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과 대책, 기협이 나아가야할 길등을 들어봤다.

-오랜만입니다. 벌써 기협회장을 그만두신지 3년이 되었군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 황회장 =요즘은 매일 송탄공장으로 출근해 작업복을 입고 종업원과
하루종일 지냅니다.

특별한 일 아니면 서울사무소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공장일에 열중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가고 아직은 제가 공장에서 해야 할일이 많아서지요.

프라스틱조합 이사장시절이나 경제4단체장의 하나인 기협회장을 할때는
정말 정신없이 바빴는데 요즘은 숨을 돌릴만 합니다.

-30여년동안 중소기업을 경영해 오셨는데 처음 사업에 뛰어든 배경은
무엇이고 어떻게 기업을 키워 오셨습니까.

<> 황회장 =저는 먹고 살기위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열일곱살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웠습니다.

고향인 충주에 땅이 몇마지기 있었지만 그것으론 생활하기 힘들어 대학
졸업후 곧바로 무역업을 시작했습니다.

취직은 내키지 않아 진양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플라스틱원료를 수입하는
일을 시작했지요.

그때가 26세때니 벌써 34년이 된 셈입니다. 이를 계기로 플라스틱분야에
눈을 떴고 당시엔 원료가 귀하던 시절이라 돈도 벌었습니다.

그후 서울 신림동에 3천평규모의 땅을 사 공장을 짓고 폴리프로필렌(PP)
우븐백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쌀부대는 가마니를 짜서 사용했는데 이를 PP백으로 대체한
것이지요.

아마 제가 처음으로 국산화했을 겁니다.

-중소기업협동조합활동은 어떤 동기로 시작하게 됐습니까.

<> 황회장 =중소기업을 경영하다보니 중소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플라스틱업종은 원료를 대기업인 석유화학업체로부터 조달하고 생산
제품은 정부나 농협등에 납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료를 안정적으로 구매하고 정부에 대한 납품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마침 프라스틱조합이사로 있는데 당시 이사장이던 신정휴씨가 개인사정으로
중간에 그만둬 갑자기 이사장이 공석이 됐습니다.

신이사장의 후임으로 지난 84년 이사장에 취임해 89년까지 조합을
이끌었지요.

-기협중앙회가 88년 민선으로 회장선거를 전환한뒤 이석주회장의 뒤를
이어 89년 두번째로 회장직을 맡았지요.

3년임기를 채운 민선회장으론 첫번째고요. 기협회장시절 주력했던 일은
무엇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 황회장 =대기업이 중소기업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막는데 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대기업에 대해선 할말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당시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사업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중소기업이 어렵게 일궈놓은 시장을 파고 들어 중소기업을 도산시키는 사례
가 많았지요.

지금도 아무리 세계무역기구체제가 발족되고 개방화 세계화시대가 되었다
해도 대기업은 대기업의 영역을,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의 영역을 지켜가야
합니다.

노태우대통령시절입니다만 청와대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사업영역문제로
모그룹 회장과 45분동안이나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벌인 적도 있지요.

-지난해에도 중소기업도산은 1만개사를 넘어섰습니다. 올들어서도 나아질
기미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 황회장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중소기업들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 대기업과의 영역다툼등을 꼽을 수있지요.

부도기업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건실한 기업도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쓰러지는 사례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통화를 긴축운용해 대출길이 하루 아침에 막힌다든지, 느닷없는
금융정책변경으로 사채시장이 얼어붙는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예측할수없는 정책이 중소기업을 괴롭힙니다. 중소기업에 충격을 주는
정책은 충분한 대응시간을 줘야 합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중소기업시책은 우리나라만큼 잘된
나라도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다는게 많은 학자들의 지적인데.

<> 황회장 =우리나라 중소기업정책이 다양한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효과가 문제지요.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은 백화점식으로 나열은 많이돼 일선 창구에선 피부로
느낄수 없는게 태반입니다.

우선 중소업체의 연쇄도산을 막으려면 정부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해 통화관리를 안정적으로 한다든지, 아니면 긴축
기조를 유지한다든지 분명해야 갑자기 돈줄이 막혀 도산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습니다.

또 대기업은 대기업에 걸맞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 수십년간 중소기업이
개척해온 시장을 하루아침에 대규모자본과 조직력으로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경쟁을 할수 있겠습니까.

애당초 대기업이 하는 영역을 중소기업이 침범하는 예는 없습니다.
중소기업정책을 총괄하는 중소기업청 신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소기업청신설엔 중소업계내부에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통상산업부내에 중소기업국으로 있는게 부처단위의 힘을 발휘할수 있어
좋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황회장 =중소기업은 전국에 8만여개가 있습니다. 이것은 5인이상
제조업체만을 계산한 것입니다.

비제조업과 영세기업을 합칠경우 수십만개가 됩니다. 그런데 이들
중소기업을 관장하는 것은 일개 중소기업국에 불과합니다.

극소수의 인원으로 한나라의 중소기업정책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제가 알기로는 중소기업국장은 통산부내에서도 별 볼일없는 자리로 인식돼
하루빨리 옮기길 원합니다.

국장의 평균재직기간이 길어야 1~2년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전문화되고 일관성있는 정책이 나오겠습니까.

미국과 일본처럼 중소기업청을 통해 전문적인 중소기업정책을 수립 집행
하는 것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중소기업이 어려울수록 기협중앙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침 기협은 지난달말 회장선거를 치렀습니다.

기협의 역할은 어떤 식으로 정립돼야 하며 무엇을 중점 추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황회장 =기협은 한마디로 중소기업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중소기업의 아픔에 대해선 할말을 해야합니다.

그것이 정부를 향한 것이든 대기업을 향한 것이든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죽어가는데도 침묵하고 눈치를 봐선 안되지요.

지금 기협이 추진해야할 중요한 사항은 부도사태를 진정시킬수 있는 방안을
건의하고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중소기업정책방향을 마련해 정부정책으로
채택될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기협회장이 임명제에서 선거제로 전환하면서 선거과열과 분쟁등을 우려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회장선거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 황회장 =민주화에 따라 민선은 불가피한 추세입니다. 다만 선거후유증을
없애려면 당파를 만들면 안됩니다.

선거운동을 해도 혼자서 해야지 무리를 지어다니며 네편 내편으로 갈라져선
기협을 제대로 이끌수가 없습니다.

또 순수한 기협회장선거에 관료를 동원해 지원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소기업인들도 뭔가 달라져야 할때라고 봅니다. 아직까지 일부 중소
기업인들은 기업을 사유물로 생각한다거나 내수시장에만 안주해 정부의
보호만을 바라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 황회장 =맞습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도 이제는 좀더 시야가 넓어져야
합니다.

우물안에서만 있으려하지 말고 세계가 변하는 것을 직접 느끼고 이에
적응해야 합니다.

또 근로자들에게 신뢰를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중소
기업인들은 주중에 골프를 치러가기도 합니다.

접대를 위한 것이든 운동을 위한 것이든 골프장에 갈땐 골프를 치러 간다고
얘기하는게 좋다고 봅니다.

종업원에게 어떤 형태로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종업원이 경영자를
불신하게 되고 이같은 골이 깊어지면 생산성이나 품질향상 매출확대등을
추진하는데 걸림돌이 될수 있습니다.

또 쓸데없는 이유로 노사분규를 겪는일도 생깁니다. 종업원에게 정직한
기업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대담 = 이기한 산업2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