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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과 도덕성타락 등 인류가 처한 공동위기의 타개를 위한 방법으로
유교사상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한 세미나가 18일 오후4시 한국학술진흥재단
회의실에서 열렸다.

퇴계학연구원(이사장 이용태)이 주최, ''유학과 현대사회''라는 주제로 마련
된 이날 세미나에서는 유교사상이 가정교육 기업경영 사회제도 등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모색, 관심을 모았다.

이자리에서 발표된 ''경제발전과 유교''(조순/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논문을
요약,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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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전통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창의성을 구속하며 공업과
상업을 천시하고 기술과 과학을 경시하는등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이데올로기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2차대전이후 아시아 유교권나라들이 유교가 갖고 있는 교육중시
사상, 근검절약및 규율과 질서를 존중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두드러진
경제성장을 이룩하자 유교의 역할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사회과학자들은 흔히 자본주의가 개신교, 그가운데서도 특히 캘비니즘의
윤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 막스 베버의 이론이 나온 이후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을 종교와 결부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베버는 일찌기 동양의 종교나 사회조직에는 발전저해적인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는데 그의 견해는 최근까지 이어져 미국에서는 근래 아시아나라들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론마저 일고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경제발전의 직속을 종교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자본주의가 전파되는 과정을 보면 경제제도로서의 자본주의는 종교와는
아무 상관관계 없이 번져왔음을 알수있다.

사실 산업혁명이후 개신교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나라, 불교 또는 신도를
믿는 나라들도 얼마든지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룰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돼
왔다.

프랑스나 일본 그리고 제정러시아의 역사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렇게볼때 현대적인 경제발전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요소는 종교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똑같은 종교나 인종을 가진 두 나라가 제도의 차이로 말미암아 다른 발전
양상을 보이는 예가 허다하다.

사람은 종교를 막론하고 이기적인 동물이기때문에 어떤 사회에서나 모두
주어진 제도속에서 스스로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합리적인 제도를 갖고 있는 사회는 경제가 자동적으로 발전하게 돼있고
그렇지 않은 제도 아래서는 경제발전이 이뤄지기 어렵다.

좋은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경제가 발전한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경제뿐만아니라 정치나 문화등 다른 모든 측면들도 모두 제도속에서
이루어진다.

때문에 제도가 잘돼있는 나라는 정치 경제등 모든 분야가 잘될 수밖에
없다.

유교의 기본사상에는 다른 어떤 철학이나 종교보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
는 제도가 중요하다"는 점이 극명하게 강조되고 있다.

논어에 나오는 "군군 신신 부부 자자"라는 표현은 제도의 중요성을
직.간접적으로 잘 천명한 말이다.

결국 경제발전은 종교와는 큰 관계가 없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경제발전의 제1요소가 그나라 사람들의 품성이라고 볼 때 품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수 있는 종교도 직간접적으로 그나라 경제발전의 패턴을
결정할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유교사상이 다른 종교나 철학보다 경제발전에 유리하게 작용할수 있는
것은 합리적 신축적으로 활동할수 있는 현실적응적 특성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은
자본주의와 큰차이가 없었다.

앞으로 중국식 사회주의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두고보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유교사상에 바탕을둔 신축적인 경제운용과 현실적응능력
으로 뛰어난 발전을 거듭하리라는 것이다.

비교적 논리를 중요시하는 서양사상이 오늘날 동유럽이나 러시아같은
나라들을 양산해 낸것과 좋은 비교가 될수 있다.

유교의 덕목중 경제발전에 유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가족
중심의 윤리를 강조하기 때문에 저축률이 높다.

또 교화를 통한 인간개선을 강조, 교육열이 높아 문맹률이 낮으며
개인주의보다는 단체의식이 강해 소속감이 투철한데다 장유유서에 바탕을
둔 질서의식이 높아 단결이 잘된다.

이밖에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과 지도력을 중시하기때문에 발전단계초기에
정부가 산업정책등을 민간에 계몽하고 영도하는 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점
이다.

아시아 유교권나라들의 경제발전을 위해 유교사상이 상당한 기여를 한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결코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

유교의 전통에는 고도산업사회달성을 위해 불리하게 작용할수 있는 요인들
도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가족관계를 너무 중시하다보니 지나치게 자기조상 자기자손만
알아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정신이 희박하다.

또 족벌은 어느사회에나 있지만 아시아제국에 있어 이 경향은 매우 심하다.

허례허식도 심해 건전한 시민정신과 기업활동을 저해할 가능성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뿌리깊은 남존여비사상때문에 여성들이 사회전반에 걸쳐
차별대우를 받고 있어 그들의 지적능력이 사회발전을 위해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가 민간의 경제활동을 통제.억압함으로써 민간의 창의성이
발휘되지 못할 우려가 크고 기업의 조직과 운영도 지나치게 상하수직적
위계질서가 강조돼 종업원들이 활발하게 창의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유교에는 보수적인 면도 있는 반면 진취적인 면도 상당히 강하다.

양자는 원리적으로 서로 대립하는게 아니라 실은 조화를 이루게 되어 있다.

유교이념을 보면 "인"을 유자의 임무로 하기때문에 한편으로는 진취적
이어야 하고 또 "언충신,행독경"을 지향,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유교사상은 본래 진취와 보수가 공존하면서 조화를 이뤄야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볼때 언제나 보수적인 측면만이 강조돼 왔다.

유교국가의 지도층들이 진취적 기상이 부족하고 소극적이며 혁신을 백안시
해온것도 이때문이라고 해석할수 있다.

이러한 사실또한 경제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성향이다.

공맹의 교리에는 수기의 근본과 치인의 원리가 완벽하게 담겨져 있다.

거기에는 현존하는 어떠한 사상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개인의 인격수양과
정치업적과의 관계를 체계화한 윤리관과 정치이론이 있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가 그것이다.

개인이 마음을 바로잡고 인격을 도야함으로써 나라의 제도를 바로 잡고
천하를 바르게 할수있다는 뜻이다.

이 원리는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나라의 경제를 좌우하는 기업가들도 기본적으로 정신수양이 제대로 돼
있어야 올바른 기업정신과 기업문화를 만들어낼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끊임없는 경제발전을 이루어 인류는 점차 기아와 빈곤에서
해방되고 있으나 도덕성 타락과 환경파괴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교사상이 특유의 조화와 중용의 정신으로 새로운 사회
의식과 질서를 창출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수 있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