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각 사업장에서 대강의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임금협상을
준비하느라 부산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노사간 중앙단위 단일 임금교섭이 어렵게 됨에 따라
기업마다 협상준비는 커녕 눈치보기에 바쁘다는 소식이다.

사업장의 개별 임금협상이 지연되면 노사쌍방은 물론 국민경제가
어떠한 피해를 입게 되는지 재론할 필요가 없다.

특히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대부분 노동생산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형편에서 볼때 노사불화는 치명적이다.

재계가 지난 13일 경제5단체장의 이름으로 7개항의 "노사화합을
위한 경제계의 다짐"을 발표한 것도 올해 중앙단위 임금교섭의 중요성을
그 어느때보다 깊이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선언은 중앙임금협상에 참여치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노총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명분제공의 뜻도 있겠지만
그 형식과 내용이 예상외로 파격적인 것임에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경제5단체장이 한 자리에 모여 공동으로 선언한 형식도 형식이거니와
그 내용도 협상의 막바지에서나 사용함직한 카드를 거의 모두 내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무엇보다 제2노총 추진세력들을 협상대상에서 배제함으로써 노총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해준 것은 정부의 노동법개정뿐 아니라 제2노총설립및
노동계 재편에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이외에도 중소기업에 대한 하청단가인상,공산품가격인상 자제,경영성과
사내복지기금출연 등의 다짐은 노동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들이다.

우리는 재계의 이같은 다짐이 노사화합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모든
성의를 다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평가하면서 오늘 열리는
노총산하 산별연맹 대표자회의를 주시한다.

노총은 이제 충분한 명분이 주어진만큼 산별대표자회의에서 중앙단위
임금협상복귀를 결정하길 간곡히 당부한다.

지금 노총은 출범 49년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때문에 이 고빗길에서 지도자들의 결정 하나하나는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제2노총 출범을 앞두고 노동계에 재편바람이 일고 있는 한편에서
동국제강 고려제강과 같이 "영원한 무파업"선언으로 노사화합을
다지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어쩌면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리라는 등 국내 노동시장도
급변할 조짐이다.

이런때 뚜렷한 비전이나 소신없이 우왕좌왕하다가는 방향감각을
잃기 쉽다.

노동시장의 여건변화는 노동계의 의식도 미래지향적으로 변하길
요구하고 있다.

재계의 성의있는 제안에 노동계도 성의있게 응답하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