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골프규칙에 관해 가장 해박한 사람중 한명으로 김동휘 대한
골프협회(KGA) 경기위원장(73)이 꼽힌다.

김위원장은 함남 서천출신으로 함흥고보를 거쳐 일 게이오대 경제과를
다니다 해방후 서울대 경제과를 나왔다.

하영기 전한은총재와 입행동기로 조선은행에 들어가 외환은행창설멤버로
참여, 뉴욕주재이사를 지내는 등 30여년 넘게 금융인으로 활약했다.

그후 현대종합상사전무, 후배가 경영하던 개인회사사장을 역임하다 은퇴
했다.

김위원장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고문도 겸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여자프로골프협회 사무실에서 김위원장을 만나봤다.

-골프와의 인연은 언제 맺었습니까.

<> 김위원장 =골프를 처음 본것은 40여년전인 지난52년 도쿄에서였는데
출근길에 동료가 잠시 들렀다 가자고해서 골프연습장을 구경했지요.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조그만 골프공이 신나게 날아가더군요.

학생때 야구를 해봐서 언젠가는 나도 골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배운것은 61년께 서울에서였습니다.

-5.16직후인 당시 골프배운다는게 쉽지않았을텐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 김위원장 =친구들과 낚시를 즐겼는데 한친구가 자꾸만 빠져서
뭐하느냐니까 골프를 한다고해요.

그친구가 연습티켓을 사줘서 대연각호텔 옥상에 있던 골프연습장엘
다니게됐지요.

-KGA경기위원장이란 자리는 규칙에 관해 도가 터야할것으로 생각하는데
언제부터 골프규칙에 관심을 갖게됐습니까.

<> 김위원장 =사이공에 근무할땐데 도쿄에 들를 기회가 있어 명문코스로
이름난 아비코골프장에서 일본인 2명,친구와 라운드를 가졌습니다.

그때 나는 그린위에서 무심코 퍼트선상을 퍼터로 두드리곤 했는데
끝난후 일본친구가 퍼트선상을 퍼터로 두드리는게 아니라고 주의를
주더군요.

국제적 망신을 당했지요.

그일이 있은후 규칙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83년 골프협회
경기위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습니다.

-골프실력도 상당하실것 같은데 핸디캡은!

<> 김위원장 =한때는 핸디캡 9까지 쳤지만 엉터리 싱글이고 요즈음엔
보기 플레이만 하면 잘하는 셈이지요.

사이공에 근무할때 교민대회에서 몇번 우승했습니다.

골프는 스코어 보다는 이나이가 돼서도 즐길수있다는것이 행복한
일이지요.

요새도 친구들과 1주일에 2~3번씩 필드에 나갑니다.

-골프예찬론처럼 들립니다.

<> 김위원장 =죽을때까지 골프칠수 있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지요.

그러려면 몇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하거든요.

첫째 건강이 기본입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골프를 할수 없지요.

둘째 어느정도의 경제력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함께 즐길 친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골프장에서 죽는 사람은 더욱 행복한 사람이지요.

-전공인 골프룰에 대해서 얘기하시지요.

골프룰이 너무 복잡한것 아닙니까.

<> 김위원장 =골퍼들이 룰을 안지키는 사유는 우선 몰라서 못지키는
경우가 있고 알면서도 안지키는 경우도 있겠지요.

몰라서 못지키는 경우가 더 많을겁니다.

일반 대중골퍼들이 룰을 배우는 길은 협회에서 나눠준 책자나 선배
레슨프로 신문 잡지등 매스컴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구두로 배우는것은 잘못됐더라도 영향력이 적지만 매스컴에서도
가끔 틀리는것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틀렸으면 그다음에 정정을 해주어야 하는데 정정도 없이 넘어가는것이
문제입니다.

-골프룰을 좀 쉽게 단순화할 필요가 있는게 아닐까요.

<> 김위원장 =골프규칙이 어렵게 돼있습니다.

규칙 만드는 곳이 USGA(미골프협회)와 R&A(영왕립골프협회)두군데인데
1744년 처음 골프규칙이 제정됐을때는 13개 조문으로된 간단한 것이었
습니다.

지금은 34개 조문으로 늘어났을 뿐만아니라 매우 세분되었습니다.

제정동기가 시합을 해서 선수들에게 상을 주기위한 것으로 까다롭게
된것입니다.

일반대중이 골프를 즐기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규제가 많은 것이지요.

-프로골퍼들 조차 룰을 잘몰라 실격당하는 경우도 있던데요.

<> 김위원장 =간소화할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령 벙커에서 담배꽁초는 치울수 있어도 솔방울은 치울수 없다든지,
그린에서 모래나 나뭇잎을 치울때 손이나 채를 사용해야지 모자나 수건은
사용할수 없다든지,워터해저드도 노란말뚝 빨간말뚝으로 나누어
처리방법을 달리한다든지 수도없이 많습니다.

곽흥수프로도 캐디가 그린위의 모래를 수건으로 치우다 2벌타를
먹은적이 있습니다.

-경기위원들도 오판하는 경우가 있다면서요.

<> 김위원장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오판하는 경우도 있을수 있습니다.

시합에서 오판이 나오는 경우를 보면 문제를 너무 소홀히 다루었다든가,
아니면 특정인을 위해 고의로 틀린 판정을 했기 때문인것으로 생각됩니다.

작년봄 미국LPGA시합에서 한선수가 그린에서 우연히 떨어뜨린 공이
공위치를 마크한 동전위에 떨어지면서 동전을 움직인 일이 있었습니다.

담당 경기위원이 단독으로 판정할수 없어 동료위원들과 상의한후
다시 미국골프협회에 확인전화를 걸고 그 선수에게 1벌타를 부과한
일이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벌점 하나를 주는데 이렇게 신중을 기합니다.

문제가 일어났을때 간단히 처리하지 말고 신중히 다뤄야합니다.

-그렇게 신중히 처리하다가는 경기진행에 차질이 생길 우려는 없을까요.

<> 김위원장 =다른 구기운동의 심판원들은 순간적으로 판정해야하지만
골프에서는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때 즉시 판정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련조문을 찾아보고 그래도 애매하면 미국 LPGA경기위원과 같이
신중을 기한다면 오판을 막을수 있을것입니다.

경기는 경기대로 진행시키면서 확인절차를 밟아도 상관없습니다.

-프로골퍼나 경기위원들에게도 어려운 규칙을 일반골퍼들에게 지키
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 김위원장 =골프룰은 USGA가 북남미,나머지지역은 R&A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일반대중골퍼를 위해 현행규정을 좀더 간단하게 하든가, 일반
대중용규칙을 별도로 만들어주기를 바랄뿐입니다.

미국에서 농구는 프로와 아마추어는 룰이 다릅니다.

현재는 복잡하더라도 모든 골퍼들이 룰을 배우고 지켜가면서 즐길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골프룰에 관해 사례별로 판정을 의뢰받는 경우가 많을텐데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해주시지요.

<> 김위원장 =우리나라에 상주하는 한 일본친구가 찾아와 한국친구와
1년이 넘도록 다투었으나 결론을 못낸 문제가 있다고 해서 자문해준
일이 있습니다.

그린사이드의 벙커뒤에 볼이 있는데 벙커안의 플레이선상에 고무래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 고무래가 눈에 거슬리기도하고 볼이 맞을 우려도 있어 치우려고
벙커안에 들어 가다보니 어쩔수없이 발자국을 남겼다는 겁니다.

그래서 벙커를 나오면서 자기가 만든 발자국을 고쳤는데 고칠수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다퉜다는 겁니다.

판례는 고칠수없다가 정답입니다.

왜냐하면 "라이의 개선"이므로 2벌타를 받게됩니다.

USGA의 판례가 있어 복사해가지고 서명까지 해서 주었지요.

-일반골퍼들간에 "첫홀 올보기"라든지 "멀리건"을 주는 관행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위원장 =그런것은 룰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골프잡지에서 "멀리건"을 설명한것도 보았는데 있을수없는 얘기입니다.

"하나 더 치시지요"하는것은 교제상 아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우리나라의 골프성적이 부진한것 같습니다.
김승학프로이후 해외우승이 없는데..

<> 김위원장 =훈련부족과 돈 때문입니다.

국가대표선수가 프로로 전향하게되면 한두해는 괜찮다가 이후엔
오히려 성적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연습에 전념해서 경기에 달려드는 자세가 필요한데
경기보다 레슨에 더 관심을 갖는 프로가 많은 것이 문제지요.

한번 일본에 가서 3~4개 대회에 출전하려면 2천만원정도의 경비가
들어가는데 성적을 못낼 경우 돈만 날리게된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골프규칙과 관련,발간한 책은 어떤것이 있습니까.

<> 김위원장 =지난 88년에 "골프규칙해설"을 냈는데 룰이 개정되는대로
다시 만들 계획입니다.

최근엔 삼성그룹에서 부탁해서 "골프교본"을 일부 쓰고 감수했으며
"골프문제집"도 발간했습니다.

이책들은 삼성그룹사내와 안양CC 회원들에게 배포됐습니다.

-연세에 비해 무척 건강하신데 골프외에 별다른 건강비결이 있는지요.

<> 김위원장 =행인지 불행인지 선천적으로 술을 못합니다.

담배도 20여년전 뉴욕있을때 끊었는데 그전에는 하루 3갑씩 피우는
골초였습니다.

<대담=양정진체육부장>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