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사를 올바로 쓰실 용의가 있는지 없는지,그것부터 답변해
주세요"

"저희들 맘대로 역사연대를 끌어 올리고 내리나"

"괜히 이병도 자랑만 하고 앉았어.이병도는 친일파 아니야"

8년전인 87년2월15,16일 양일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한국상고사의
제문제"를 주제로 개최했던 학술회의는 재야사학자들의 소위 관학자들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해 버렸다.

주제발표자 한 사람이 고조선의 도읍지인 왕검성이 대동강유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의 하북성 요하유역이었다고 주장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고 토론시간에 방청객중 한사람이 백제는 도읍을 산동반도에다
정하고 남으로는 상해,북으로는 북경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통치했다는
나름대로의 설을 늘어놓자 "옳소"하는 탄성까지 터져 나왔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이 1,200여명이나 됐다는 것은 한국인의
상고사에 대한 관심도를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다.

물론 한국사학자들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할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사실"과 "사관"을 혼동함으로써 흔히
감정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버린다.

학설이라고는 할수 없는 억지주장도 수없이 많다.

비록 아득한 옛날에 한국인이 만주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고 그려건국이후 1천년동안 한국의 영토는
반도에 국한돼 있었다.

영토가 넓어야 위대한 국가가 된다는 영토확장적 민족주의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이다.

한국인은 선사시대부터 만주과 한반도를 그 활동무대로 삼아 살아왔다.

한국인의 조상들이 처음부터 민족에 대한 의식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작은 씨족사회에서부터 서로 뭉치기 시작해 역사적으로 형성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공안당국이 한국인의 중국내 활동이나 조선족들과의 접촉을
민족통일이나 고토회복운동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간도 용정에 가면 "말달리던 선구자"를 소리높여 불러대고 흰두루마기
차림으로 백두산 천지에 가서 요란 젯상을 차려놓고 천제까지 지내기
일쑤이며 발해의 옛땅을 파헤쳐 기왓장만 나와도 고구려양식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한국인들의 작태를 보면 중국 공안당국이 걱정하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은 간다.

그 지역이 한국의 고토였다고 해도 지금은 엄연히 남의 땅이다.

그곳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고토의 옛인답게 외국인으로서의
예절을 지켜 중국 공안당국의 불필요한 감시대상이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