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숙 < 라프 드래프트 코리아 사장 >


92년4월 "라프 드레프트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우리회사는 출범
1년반만인 지난 93년말 1백만달러 수출탑을 받았고, 작년말에는 상공부로
부터 수출유공자상을 획득했다.

만화영화와 인연을 맺은지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세월만큼 얻은
것도 많다.

이 업종에 몸담으면서 다짐했던 "한달에 20분짜리 TV물 1편을 제작하더라도
작품의 질을 우선 고려한다"는 방침은 지금도 변함없이 옳았다는 생각이다.

이같은 원칙에 충실한 경영방침이 미국시장에서 뿌리내리는 바탕이 됐다고
믿는다.

미국시장의 확보는 만화영화업계 최대의 난제인 비수기를 큰 타격없이
넘길수 있음을 의미했고 결과적으로 회사경영을 안정시키는데 밑거름이
됐다.

또하나의 소중한 경험은 바이어접대문제에서 얻었다.

회사설립 초기 세계최대 만화영화사인 월트디즈니와 여러차례 접촉을
시도한 끝에 어렵게 한국방문 응락을 받아냈다.

공항으로 마중을 가야겠는데 자동차라고는 소형승용차 한대밖에 없는데서
문제가 생겼다.

이차로 바이어를 맞으러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고급승용차를 빌려야 할
것인가.

우리는 전자를 택했다.

바이어에게 보일 것은 상품과 회사에 대한 신뢰감이지 결코 화려한 외형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우리는 지금 월트디즈니가 의뢰한 작품을 열심히 분석
하고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다.

기쁜 일이 적잖았던 한편으로 어려움도 많았다.

국내외 업체간의 과당경쟁은 갖가지 고난을 안겨줬다.

일반적인 어려움외에도 만화영화라는 특수성때문에 겪는 곤란도 크다.

인력의 부족, 시간의 촉박성, 그리고 환율변동등이 그것이다.

국내에 만화영화가 들어온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까지 고급
애니메이터 양성기관 하나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실정이다.

자연히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작품과 여름철 성수기에 폭주하는 주문물량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고급작품은 유럽이나 일본에, 저급작품은 동남아나 중국에 뺏기고
있다.

이상태로 가면 몇년후에는 국내업계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시간을 넉넉하게 주는 발주처는 없다는 것이다.

주문처는 어디나 빠듯한 스케줄에 맞춰 요구한다.

연초 항공사여직원이 실수하는 바람에 캐나다밴쿠버로 가야할 영화필름이
엉뚱한 곳에 보내진 적이 있다.

3일후에야 간신히 밴쿠버에 필름을 도착시켰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납품약속을 어긴꼴이 되고 말았다.

달러의 환율변동 또한 많은 어려움을 안겨준다.

만화영화 제작비는 거의가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업종의 특성상 인건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결국 결제단위인 달러화의 약세는 곧바로 경영여건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달러당 7백60원선까지 떨어진다는 것은 국내만화영화업계 전체에 적신호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만화영화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도 미국의 예에서 보듯 성장잠재력이 큰 만화영화산업에 대한
투자를 하루빨리 늘려야 한다.

케이블TV로 인해 만화영화업계가 열의를 보이고 정부와 일반국민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조만간 국내업계도 기획작업에 참여할 능력과 여건을 키워 만화영화
제작수준을 한층 높일수 있을 것이다.

우리회사의 경우 국내 처음으로 기획제작하고 있는 "MAXX"를 미국 MTV를
통해 방영할 계획이다.

지난 91년 "인어공주"의 히트를 시작으로 지난여름 "라이온킹"붐까지를
미뤄볼때 한국시장은 미국만화영화업계의 황금알거위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
이다.

눈을 돌려 바로옆의 일본시장을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해 여름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 "라이온킹"은 일본에서 기대했던
것만큼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제작된 만화영화가 더욱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친숙한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자연과 문명의 대립과 공존이라는
주제를 담은 만화영화 "헤이세이너구리작전 폼포코"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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