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미국대법원장이 우리나라에 와서 강연한 말이 생각난다.

선량한 시민이 억울하게 인권침해를 당하였을때 그것을 보고 분노하는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되나.

그 숫자가 많을 수록 선진국에 가깝고 그 숫자가 적을수록 후진국에
가깝다는 말이다.

극도의 개인주의,무리한 실적주의,지역(또는 직역)이기주의,적당주의,
권위주의,마키아벨리즘(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이런
것들이 후진국의 징표다.

선진국은 모든것이 편리하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불편하다.

그리고 후진국은 어디서나 뇌물이 횡행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은 과연 어떠한지 알고 싶다.

우리는 첫째로 우리 생활주변의 불편을 추방하여야 되겠다.

이는 어느 누가 우리에게 거저 갖다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투쟁하여서라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자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특히 공무원들이
봉사자로서의 사명을 인식하고 시민들을 지도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

쥐꼬리만한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최대한으로 행사한다면
그 결과 국민은 최대한으로 불편하여지는 것이다.

필자가 보고 듣고한 이야기 한 가지를 간단히 여기에 소개한다.

최근 서울시내 어느 경찰서앞 횡단보도에 설치된 신호등을 오후8시40분부터
밤 12시께까지 관찰하여 보았다.

그 신호는 1분30초 간격으로 보행자횡단신호(자동차에서 보면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었다.

약 3시간20분동안에 횡단하는 사람이라곤 4~5명뿐이었다.

이런 경우는 밤이고 하니 보행자 스스로 신호를 조작하여 건너가도록
장치하였으면 자동차 소통에 훨씬 편리할 것이다.

늦은 밤에도 많은 자동차들은 1분30초 간격으로 계속 정지와 출발을
거듭하고 있었다.

버스나 택시들 중에는 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도 있었다.

불합리하기 때문이리라. 후진국에서는 정상적으로 당연히 될 일도 부탁을
하지 않고는 빨리 되지 아니한다.

아는 사람이 있어서 부탁을 하고 손을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시민들의 의식수준이다.

"아는 사람이 없으면 결딴나는 사회"그것이 후진국 사회다.

요즘은 민원인들이 제법 자기 주장을 하여 제대로 되어 간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불편하고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직업공무원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아니하니 공무원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져 있다.

그래서 무사안일 복지부동이 만연한다.

그 때문에 시민들은 더욱 불편해지고..불편의 악순환이라고나 할까,차라리
민원창구에 앉아서 일하는 공무원들을 세계의 여러나라에 보내서
선진국 공무원들은 모두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직접 자기 눈으로 한번
보고 느끼고 배우게 하였으면 좋겠다.

둘째 선진국은 불안하지 않다.

지진 같은 것이야 어쩔수 없지만 가스폭발사고,기차탈선사고 등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으니 자기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적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직장 자체가 불안정한 데다가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불안하다.

역대 정권들이 이 점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켜왔다.

이솝우화처럼 정말로 북한이 쳐들어온다고 하여도 이제는 백성들이
믿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정말로 큰일이다.

셋째 선진국의 정부와 국민은 서로 불신하지 않는다.

공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국가의 존립을 위하여 군대 식량 믿음 이 3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선생께서는 이들 중에 먼저 버린다면 무엇을 버리겠습니까.

군대를 버려라,그 다음 식량을 버려라,끝까지 버려서는 안될 것은
믿음이니라.왕과 백성이 서로 믿지 못하면 나라가 설수 없고 백성들이
서로 믿지 못하면 아무 일도 될수 없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법이 곧 약속이니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다.

요즘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국민이 세금을 내도 그것이 국고로 들어갈지
믿지 못하고 있다.

조직적 구조적으로 곳곳에 부정이 만연되어 있으니 이 나라의 앞날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이 일부 소수의 부정이겠지 하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편리하고 안전하고 서로 믿고 살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불편
불안 불신등 삼불추방운동을 강력히 펴나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