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대 <기아경제연구소 소장>

지난해 세계 자동차사업에 나타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사상 처음으로 5,000만대를 돌파했고 미국이 14년전에
일본에게 내주었던 세계최대 자동차생산국의 자리를 되찾았다는
사실이다.

90년대 접어들어 미국 일본 서유럽의 순으로 대충 1년간 시차를
보이면서 심각한 불황에 빠져들었던 세계자동차시장은 94년에는
완연한 회복의 기미를 나타냈다.

작년의 자동차시장은 전체적으로는 확장의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확장국면의 단계와 확장의 속도는 지역별로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미국시장이 상승국면의 꼭지점 부근에서 이례적인 호황을 누리고
서유럽시장이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든데 비해 일본에서는 하반기에
이르러서야 월별판매가 감소에서 증가추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개도권에서는 중국 한국 아세안4개국등 동아시아와 브라질 아르헨티나등
남미지역의 활력이 돋보이는 한해였다.

이 결과 작년의 세계전체 자동차수요는 93년의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돌아섰을 뿐만 아니라 증가폭도 7%를 넘어서 판매대수가 4,900만대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9%를 웃도는 미국시장의 확장추세는 가히 기록적인 것이었다.

금년에는 미국시장의 활기가 약간 수그러드는 대신 서유럽의 회복세가
빨라지고 일본의 시장회복이 한층 진전됨에 따라 세계전체의 자동차판매는
작년과 비슷한 폭으로 늘어날 것이 에상된다.

작년의 호조세가 재현될 수요 개도국시장의 활기는 세계전체의 회복세를
한층 탄력있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금년에는 세계주요시장들이 한꺼번에 활기를 띠는 동반호황이
전개됨에 따라 세계 총생산과 총판매가 모두 5,000만대를 넘어서는
신기록이 예상된다.

미국시장에서는 90년대 초입의 불경기속에서 훗날로 미루어졌던
소비자들의 대체수요가 금년의 신차구매력을 튼튼하게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구매지연으로 쌓여온 대기수요의 규모는 600만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중 상당부분이 금년에 해소될 전망이다.

다만 연방준비위원회의 고금리정책이 시장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일본시장에서는 전반적인 경기회복에 따른 민간소비의 증가,여가용차량
(RV)수요금증,금속히 확대되고 있는 저가격차의 출시,차량 총중량 규제
완화와 과적차량 규제강화로 인한 트럭 수요 확대등이 자동차시장에
모처럼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3년연속의 판매감소끝에 94년 한햇동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던
일본 내수시장에서는 금년에 5%가량의 판매시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동차시장의 실질적인 개방확대문제가 미일통상협상의 주요쟁점으로
걸려 있는 가운데 일본의 외국차수입은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93년에 20만대에 이른 승용차수입은 94년의 27만대에서 금년에는
32만대로 늘어나 시장점유율도 93년의 5%미만에서 금년에는 71%로
높아지게 된다.

93년에 전후최대의 판매감소(-15.3%)를 겪었던 유럽시장에서는 94년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이 대폭적인 판매증가를 기록,독일 이탈리아등의
부진을 상쇄하고도 지역전체의 시장을 확장세로 반전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금년에는 독일 이탈리아등의 부진국가가 회복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서유럽전체의 자동차판매는 7%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일본 서유럽의 3국으로 짜여진 세계자동차시장 판도를 서서히
바꿔놓고 있는 동아시아시장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고속성장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94년현재 한국 중국 대만 아세안 국가들의 시장규모는 500만대에
이르렀으며 앞으로 전개될 산업화와 발빠른 경제성장추세로 미루어
10년후면 이 지역이 1,000만대의 시장규모를 가진 제4의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세계자동차시장을 지배하는 선진
메이커들의 아시아 러시는 한층 분주한 행보를 보일 것이다.

선진권시장의 장기적인 공급초과에 시달려온 선진메이커들은 이
지역을 지구상의 "최후 최대의 시장"또는 "마지막 희망"으로 파악한다.

주요선진메이커들의 세계화전략에서 차지하는 아시아전략의 비중이
커지면서 동아시아시장 접근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그들의 각축은
날로 열기를 더해갈 것이다.

한국이 그 전략의 목표지역 안에 들어있는 것은 물론이다.

세계자동차산업 발전사에 있어서 작년과 금년을 포함해 90년대
중반은 생산성과 품질의 대폭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시기로 기록될만
하다.

이것은 90년대 초입의 고통스러운 경기 침체속에서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전개한 대대적인 리스트럭처링의 산물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업계가 거둔 경쟁력 강화의 성과가 가장 눈에 두드러진다.

지난92년 미국시장에서 포드의 토러스가 혼다의 어코드를 누르고
베스트셀러카 자리에 올랐을 때만 해도 그것이 바로 미국차 경쟁력회복의
상징인양 해석하는데는 망설임이 앞섰다.

94년 크라이슬러의 소형차 네온의 등장은 생산비 절감과 개발기간 단축의
비법이 일본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고 이를 전후하여
미국 빅3의 경영전반에서 효율성증대의 조짐이 광범하게 나타났다.

그 종합적인 성과는 시장에서 곧바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미국 자동차의 이같은 변화는 일본차의 승승장구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미국업계가 80년대 이래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경영합리화 노력의 결실로
봐야 할 것이다.

일본과 서유럽의 메이커들도 미국업계 못지않은 혁신의 대수술을 단행했고
그 결과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온 이들 역시 과거와는 사뭇 다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예컨대 생존을 위협하는 엔고의 극심한 불황속에서 추진한 일본기업들의
원가 절감 운동은 무려 30%에 달하는 생산비감축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것은 난국타개의 몸부림이 얼마나 처절했던가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인원삭감 공장폐쇄 부품수 축소 모델변경주기연장등 온갖 방법을
총동원한 리스트럭처링으로 일본업계는 38%의 생산성향상을 달성했다는
보고도 나와 있다.

한편으로 이런 움직임을 염두에 두면서 또 한편으로 안전.환경기술의
난도가 부쩍 높아지고 있는 추세를 주의깊게 관찰하는 전문가들 사이
에서는 앞으로 개도국 후발메이커들의 세계무대 진입로가 한층 험악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한동안 후발업체에 넘겨줄 것으로 예상되었던 낮은 가격대의 소형
승용차부문이 선진메이커들의 주력사업으로 채택된 것도 최근동향에서
발견되는 특징적 현상이다.

95년의 세계자동차시장을 내다보면서 한국자동차수출의 호기가 될 활황
장세보다도,엄청나게 강력해진 거대메이커들의 불꽃튀는 접전과 그것이
지니는 의미에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