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자유와 번영을 증진시킨 최근 2~3세기간의 근대화에 만일
공사법상 몇가지 일반원칙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이만큼의 발전은
불가능했다.

그 가운데도 소급처벌 내지 소급입법의 금지,소유권절대와 계약자유의
원칙,그리고 절차의 정당성존중 원칙을 꼽을수 있다.

대통령 연두회견시 안정기조 확보의 수단으로 강조된 부동산 실명제실시가
필요이상의 파문을 일으킴을 보면서 정치에서 원칙의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더구나 이 제도를 추진하는 정부의 서두르는 태도를 보고 일말의 우려를
누를 수가 없다.

6일 회견에서 대통령의 강조,9일 오전 경제부처 95년 업무계획에 일괄
보고,오후 2시 부총리의 추진방향 발표등 어느때 보다 다급한 걸음을
걷고 있다.

발표내용도 한때 2년의 경과기간을 둔다는 신중론 대신 올1.4분기중 입법,
7월1일 시행,유예기간 1년으로 경직화하여 경제적 측면보다 개혁적 성격
만이 강조된 느낌이다.

따져보면 부동산 실명제는 금융실명제와 비슷한것 같지만 다르다.

토지라는 대상물은 자금처럼 일거에 동결하고 시행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어 일을 그르칠 성질이 아니다.

오히려 실명제 실시의 확실성을 높임으로써 일차적인 정책목표를 일단
달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명은 정직,차명은 부정이라는단순논리에 사로잡혀 새 법이 뿌리깊은
거래관행에 대해 응징적 태도로 급선회할 경우에는 자칫 소급입법의
과오를 범하고,보호법익과 부작용에 불균형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계약자유 원칙이 존중되는 현실성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이 내놓고 업무용 토지를 매입하려면 지주들의 요구 지가가 너무
엄청나 사업을 포기할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명의신탁이 판례의 지지를 받는 까닭이 있다.

유예기간 뒤의 일괄 무효화 입법은 큰 법적 논란을 초래할수 있다.

종중땅과 함께 기업의 업무용 토지매입에 국세청 신고후 명의신탁을
인정한다지만 실제로 모든 거래에서 국세청 사전신고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지,종중재산의 입증을 어떻게 할것인지 정부의 할 일만 늘게
됐다.

만부득이 하여 부동산 실명제를 시행하더라도 그 범위는 필요한 최소한
으로 해야 하고 부작용 억제에 세심한 배려를 함이 바로 절차의 정당성
이다.

입법예고를 하여 공론에 부친다지만 1.4분기에 입법을 끝내려면 토론은
형식뿐이다.

법치주의에서 가장 존중될 기본원칙이 절차의 타당성 정당성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폭력혁명이나 쿠데타와 달리 빠르지 않고 더디다.
일사불란하지 않고 말이 많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발전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0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