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타율적으로 분단된지 50년.우리는 우리의 오랜 민족역사상
지금처럼 남과 북의 주민이 사상적으로 이질화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싸워온 일이 없다.

지금 우리는 김일성 주체사상이라는 폭력혁명사상과 자유민주주의라는
이기적 온갖 교활성이 허용되는 배금사상에 물들여진 남과 북의 이질적
가치체계의 지배하에 산다.

현대의 양심적 지성에게는 이 두가지가 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괴물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체계가 혼돈과 무질서 부정부패라는 바람직스럽지
않은 결과를 낳지 않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되는 "민"이 주어진 자유를 스
스로 고귀하게 지킬만큼 성숙된 의식을 가져야한다.

남쪽의 비극은 자유민주주의실천의 주인공인 사람들이 미처 준비도 안된 상
태에서 후견인으로부터 이 가치체계를 도그마처럼 강요당하고 아직도 그것
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에는 통제성 규범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것이 잘 되기위해서는 그 주인공들이 감정에 치우쳐 쉽게 싸우지 않으
며,성실하고 정직하고 진실로 가치있는것을 자기자신의 판단력으로 알고
실천하는 양심의 소유자가 되어야한다.

그런데 우리네 마음은 왜 이다지도 더럽고 이 악하고 간사스럽고 포악한가.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다른 측면인 자본주의에 대해 반성하면서 현대산업사
회라는 것이 바로 이 두가지 이름의 가치체계위에 생겨난 경쟁사회라는 사
실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제 막 진입하게 되는 세계화의 시대라는 것은 국경없는 세계경
제의 경쟁사회이다.

그래서 이 시대를 무한경쟁의 시대라고도 한다.

우리는 70년대의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 우리 승리의 원동력은 불행하게도(?) 자유민주주의적방식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2000년을 5년 앞둔 오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방식으로 이 경쟁에
서 이기고 세계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해가 바뀌었다고 함정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도처에 우리가 매설한 지뢰와 같은 함정이 있어 언제 또 폭발할지 알수 없
는 상태이다.

성수대교사건도 아현동가스폭발사건도 세금도둑사건도 다 사람들의 마음
의 산물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전세계 다른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가치세,잘못된
문화때문에 바람잘 날이 없다.

세계화의 영어는 gloealigation 이요,그것은 직역하면 지구화이다.

지구가 한마을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촌은 결코 믿을만한 다정한 소박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다.

실력이 없는 학생이 커닝( cunning )을 하는 시험시간처럼 산업혁명이 시
작된 이래 생산하고 판매하고 이익을 챙기기위해 혈안이 됐던 병적심리가
무엇이었던가 cunning 이다.

이말의 제일 온당한 뜻은 "기술에 관한 지식"이다.

그러나 어너제나 정공법만이 사용되지는 않는법,온갖 간사하고 기기묘묘한
속임수,말하자면 부정행위가 그뜻이 된다.

나는 오늘의 경영학이 자유민주주의의 주인공,자본주의의 주인공들에게
승리와 성공의 방법으로 "커닝" 잘하는 법을 가르치지는 말아주었으면
한다.

cunning 의 좋은 의미도 있다.

예리한 직관,실질적이고 분석적인 지성,풍부한 기략등.우리는 우리를 속이
려드는 세계인들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기위해 세계인들의 컨닝한 심리를 알
고 경계하며 그것을 이기는 정정당당한 길을 제시하고 그 길(도)을 가도록
자신을 훈련시켜가야 할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정정당당하게만 살아온 적이 없다.

실수와 실패,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살아온 것이 인류이다.

하지만 인간이 야수와 다른점은 양심의 소리를 듣고 뉘우치며 고쳐나가려
애쓰는 바로 그점에 있다.

세계에도 우리나라에도 통합화와 세분화의 모순된 움직임이 있다.

우리는 나라안에서부터 컨닝한 사람들의 영향력을 배제하며 양심을 지키
는 세계화 지방화의 기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8일자).